본문 바로가기
우리나라 근대사.문학 .교육/시집

박경리 수필집 내마음은 호수 기다리는 불안 거리의 악사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24. 2. 5.

품   명    박경리 수필집 내마음은 호수 기다리는 불안 거리의 악사

시   대   거리의악사 1977 내마음은 호수1964년 초판  기다리는 불안60년대

크   기   13.5*19

주   기

<책소개>  내마음은 호수

 

  박경리 장편소설. 1955년 단편 '계산'으로 문단에 나온 박경리는 1957년 '애가'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장편 창작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1959년 현대문학에 연재한 <표류도>는 문단과 독자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내성문학상'을 수상한다. <내 마음은 호수>는 <표류도> 다음에 발표한 박경리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1960년 4월 6일에서 12월 31일까지 「조선일보」에 총 269회 연재되었다. 특이한 사실은 <내 마음은 호수>와 함께 지방 신문과 여성 월간지에 <은하>와 <성녀와 마녀>가 동시에 연재되었다는 점이다. 세 개의 지면에 동시에 작품을 연재하는 상황이 연출된 셈인데, 이러한 글쓰기의 과정은 작가의 생활고와 관련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내 마음은 호수>는 기혼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그 사랑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 유혜련은 소설가이다. 여성 소설가가 등장하는 박경리의 또 다른 소설 <영원한 반려>나 <겨울비>와 비교해 볼 때 <내 마음은 호수>는 소설가인 주인공의 문학관이나 창작 과정 등은 소략되어 있다. 실제로 작품 중반 이후부터는 문학과 관련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이영설과 유혜련, 그리고 송병림을 중심으로 한 얽히고설킨 관계망이 주된 서사를 이룬다.

 

<작가소개> 박경리

 

  민족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 『토지』의 작가. 『토지』가 없는 한국 문학사를 상상해 보면, 박경리란 인물이 우리 문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박경리의 어린 시절은 각박했다. 열네 살에 네 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해, 열 여덟에 박경리를 낳은 아버지는 박경리가 태어나자 마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그런 아버지를 박경리가 좋아했을 리 없고, 어머니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진주여고를 다닐 때는 학비를 보내주기로 했던 아버지가 학비 부담을 어머니에게 미루자, 아버지를 찾아가 따지다 맞은 일도 있다. `여자가 공불하면 뭣하나. 시집가면 그만이지` 하는 말에, `당신이 공부시켰어요? 그만두라 마라 할 수 있습니까? `라고 서슴없이 `당신`이라 부르며 대들자, 아버지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박경리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문학은 그 시절 박경리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자 희망이었다. 책을 미칠 정도로 좋아해 누가 책방에 돌려주는 책이 있으면 싹싹 빌어서라도 책을 손에 넣고선 밤새 읽고 돌려주곤 했다. 하룻 밤새 책 세 권을 읽고 새벽녘에 새빨개진 눈을 껌뻑거리던 기억도 생생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인천 전매국에 근무하던 남편과 만나 결혼해 어두웠던 가정사의 그늘에서 벗어나는가 했으나, 그 남편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투옥되고, 6·25 때 월북하면서 다시 홀로 되고 말았다.
  평화신문과 서울신문의 문화부 기자를 거치며, 기자가 부족해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던 그는 일년 뒤 힘들다는 이유로 신문사를 그만두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69년 『토지』를 집필하면서 그는 일년간 세상과 철저히 담을 쌓고 살았다. 원래 『토지』는 지금처럼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로 계획되었던 것이 아니다.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얘기를 토대로 한 권 분량으로 써서 탈고까지 마친 후에야 세상에 공개하기로 작정했던 작품이었다. 독하게 마음 먹고서 전화도 끊고 신문도 끊고 원고 청탁도 일체 받지 않은 채 원고지를 채워 나가던 그는,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 가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했다.

  한 차례의 절필을 포함한 우여곡적 끝에 1994년에야 끝난 이 대장정은 원주시 단구동 옛 집에서 완성되었다. 1997년 이 지역이 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토지』의 산실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문화계 및 지역인사들이 나서고 토지개발공사가 협조하여 3천평 짜리 `토지문학공원`으로 영구보존 되었다.

  여기에는 박경리가 『토지』를 써낸 커다란 앉은뱅이 책상이며, 글이 막힐 때면 건너가 괜히 뒤척거리던 `고추말리는 방`, 기자가 오면 `빠꼼히` 내다보고 내쫓곤 하던 현관 바로 옆으로 난 창문 등 모든 공간과 가구가 쓰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외에도 그가 살던 집을 중심으로 『토지』의 작품무대인 경남 하동의 평사리 마당, 홍이동산, 섬진강, 그리고 용두레벌(용정)이 작품 속 분위기 그대로 복원되어, `토지문학공원`을 구성하고 있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존엄을 침해받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박경리는 이런 점에서 『토지』의 등장인물 중 최치수를 자신의 분신으로 꼽는다.

'우리나라 근대사.문학 .교육 > 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대 조선문학전집 (단편집하)제4권  (0) 2024.02.15
노산문선(鷺山文選)  (2) 2024.01.15
자유(自由)창간호  (0) 2024.01.15
조선평민문학사  (2) 2023.11.23
역대조선문학정화 권상  (3) 2023.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