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古書)
백촌 김선생유사(白村 金先生類事)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08. 2. 15. 12:12
품 명 백촌 김선생유사(白村 金先生類事)
크 기 20.30.5쎈치 목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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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조선 시대 초기 문신. 예문관 검열 · 정언 · 함길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하고, 그의 가묘를 서울시 노량진 사육신묘역에 설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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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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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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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촌 |
별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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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공,초명 효기, 시호충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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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의공김문기유허비 / 충북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충북기념물 제44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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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본관 김녕(金寧). 자 여공(汝恭). 호 백촌(白村). 초명 효기(孝起). 시호 충의(忠毅).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였다. 1430년 예문관검열(檢閱)·정언(正言)·함길도관찰사를 역임하고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1456년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주동한 단종복위(端宗復位)의 모의에 가담하였다. 모의가 발각되자 고문에 굴복하지 않다가 이개(李塏)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영조 때 9대손 정구(鼎九)의 송원(訟寃)으로 복관되었으며,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知禮面)의 섬계서원(剡溪書院)에 배향되었다. 1981년 서울시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하고, 그의 가묘를 서울시 노량진 사육신묘역에 설치했다.
1977년에 김문기가 사육신에 해당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자 서울시, 문교부, 문화공보부, 국사편찬위원회 등이 심도있는 연구와 논의를 하였다. 그 결과 서울시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합의사항을 참조하여, '유응부의 사육신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김문기 선생을 사육신과 같은 충신으로 현창'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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