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명 山水軒 권진응(權震應)선생의 간찰 7점을 모아 첩장한 [산수헌수적(山水軒手蹟)] 18.3.대.한.구 90 크 기 25.4× 38.2cm
주 기 山水軒 권진응(權震應)선생의 간찰 7점을 모아 첩장한 [산수헌수적(山水軒手蹟)] 單帖으로 帖末 1張(2面)이 파손, 탈락되어 간찰 2점이 각각 절반씩 손상이 되었으나 나머지 간찰 5점은 상태 양호하다. ① 권진응(權震應. 1711-1775. 安東人, 字는 亨叔, 號는 山水軒) 권상하(權尙夏)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정성(定性)이며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상주목사(尙州牧使) 병익(炳翼)의 딸이다. 당시에 세도가 괴란(乖亂)되고 당쟁이 심화되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명으로 과장(科場)에 한번 나갔으나 엽관(獵官)의 작태를 목격하고는 오로지 학문에 정심(定心)하여 한원진(韓元震)선생에게 나아가 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예학(禮學) 등을 깊이 연구하였다. 1750(영조 26)년 사산감역(四山監役)을 제수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755년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부솔(副率), 1759년 세손위종사(世孫衛從司) 우종사(右從司)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으며, 1770(영조 46)년 시강원(侍講院) 자의(諮議)에 제수되었다. <山水軒先生遺稿> 가 있다. 1770(영조 46)년 시강원(侍講院) 자의(諮議)에 제수되었으니 세손 정조대왕의 교육을 맡았던 당대의 석학이다. ② 시강원(侍講院)-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태조 초에 설치된 세자관속(世子官屬)을 뒤에 개칭한 것으로 왕세자를 모시고 경서(經書)와 사적(史籍)을 강의하며 도의(道義)를 가르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관원은 사(師, 정1품), 부(傅, 정1품), 이사(貳師, 종1품), 좌우빈객(左右賓客, 정2품), 좌우부빈객(左右副賓客, 종2품), 찬선(贊善, 정3품), 보덕(輔德, 정3품), 겸보덕(兼輔德, 정3품), 진선(進善, 정4품), 필선(弼善, 정4품), 겸필선(兼弼善, 정4품), 문학(文學, 정5품), 겸문학(정5품), 사서(司書, 정6품), 겸사서(兼司書, 정6품), 설서(說書, 정7품), 겸설서(兼說書, 정7품), 자의(諮議, 정7품)가 각각 1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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