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한장 이야기한줄 수졸재 (守拙齋)

감곡 갤러리카페 주인의 중앙탑 .연꽃 출사기록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15. 7. 11.

 중앙탑 면사무소에서본 임페리얼 레이크 싸이드 cc

 

 

 

 

 

 

 

국보 제6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화강암 석재의 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높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하여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불린다. 충주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요지였던 곳으로 삼국은 모두 이 지역을 전진기지로 중시해왔다.

현재의 위치가 원위치로서 주변 경작지에서는 가끔 기왓장이 출토되고, 또한 석탑 앞에는 석등하대석(石燈下臺石)으로 보이는 8각 연화대석(蓮華臺石)이 남아 있어 이 일대가 신라시대의 절터임을 짐작할 수 있으나, 이곳 유적지에 대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으므로 사찰명(寺刹名)은 알 수 없다

 

 

 

 

 

중앙탑의 공식 명칭은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中原塔坪里七層石塔)으로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호로 지정되었다. 이 명칭은 지정 당시 탑이 위치한 곳의 행정지명(중원군 가금면[현 중앙탑면] 탑평리)과 탑의 층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1916년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에는 탑정리 칠층석탑으로 칭하고 있다. 이 명칭 역시 행정구역 개편 이전의 지명(충주군 금천면 탑정리)을 따라 칭한 것이다.

일명 중앙탑이라 애칭되는 명칭이 언제부터 칭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제강점기인 1916년 작성된 탑의 수리에 관한 문서를 보면 모두 ‘중앙탑’이란 명칭을 쓰고 있다. 이 문서 말미에 “구비로 전함에 의하면 중앙탑의 명칭은 조선의 중앙지라고 전설하였다는데 유함이라”고 하여 중앙탑의 건탑 유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전설은 통일신라시대의 경우 영토 위치로 보아 탑의 위치가 중앙이 되는 지점에 있기 때문에 전해진 것이라 보인다. 중앙탑은 삼국시대부터 국원(國原) 또는 중원(中原)이라 칭한 충주에 위치하여 지역적으로 중심 고을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탑이다. 충주 지역의 주민들은 공식 명칭을 거의 쓰지 않고 중앙탑으로 애칭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