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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사.문학 .교육

사상 현대문학 자유문학 창간호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15. 11. 15.


품   명   사상 창간호  

주   기    장준하는 6․25 때 부산까지 피난을 왔으며, 중국 임천(臨泉)의 한광반(韓光班)에서 손으로 써서 발간했던 잡지《등불》과 서안(西安) OSS 대원 시절에 발간한《제단》에 이어 1952년 9월 《등불》과 《제단》의 후신(後身)이라고 할 수 있는 월간지 《사상》(思想)을 창간했다. 그러나 《사상》은 그 해 12월호까지의 단명으로 끝나고 이듬해 1953년 4월에 이것을 이어 《사상계》(思想界)를 창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사상》과《사상계》를 전․후신(前․後身), 또는 이명동체(異名同體)로 보기도 한다. 또《사상》을 계속 발간하려고 받아 놓았던 원고가 그대로《사상계》의 창간호가 되어 나왔으므로 그 내용과 체제도 똑같았다.이러한《사상》을 창간하는 데에는 백낙준(白樂濬)의 도움이 컸다. 문교부장관 산하의 연구원인 장준하는 문교부장관인 백낙준에게 연구원의 기관지(機關紙)를 발행하자고 건의하였기 때문에 그 잡지의 형식은 정부 산하 연구원의 기관지일 뿐이었지만 순수한 일반교양을 추구하였다.《사상》을 초기에 무상으로 배포한 후 유료제로 바꾸자 사람들이 사보지 않았고, 박마리아가 대통령 이승만에게 “문교부장관 백낙준이 내고 있는 잡지 《사상》이 주로 흥사단(興士團) 계열과 비판적인 인사들이 집필하는 것이니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라고 간언한 영향을 받아 이후 대금이 끊어져 단명하였다.장준하는 그 동안《사상》의 속간을 위해 애써 모은 원고의 목록을 작성해 백낙준에게 찾아갔다. 제호는 《사상》의 후신임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거기에 ‘계(界)’자를 하나 더 붙여《사상계》로 하였다. 발행 인가를 새로 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재정상 문제에도 부딪혔지만 친지가 소개하여 준 《리더스 다이제스트》사장 이춘우(李春雨)덕분에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또한 국내 최고의 인기 월간지인 《리더스 다이제스트》한국판의 강력한 배포망과 수금 체제를 등에 업고 시작해, 《사상계》는 추가 주문이 쇄도할 만큼 잘 팔려나갔다.

품    명   현대문학  창간호크    기   14.5*20.5주    기    고은, 김관식, 조정래, 이범선, 최인호, 서기원, 박경리.이 기라성 같은 한국문학의 대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현대문학』을 통해 배출된 작가라는 점 입니다. 오늘은 2015년 1월로 '환갑'을 맞은 우리나라 최장수 문예지 『현대문학』    우리나라 최장수 문예지, 현대문학의 탄생 『현대문학(現代文學)』 은 6·25전쟁 직후인 1955년 1월, 현대문학사에서 창간되었습니다. 『현대문학』창간 이전에도 국내 수순 문예지인 『문예 』가 있었지만, 6·25전쟁의 발발로 1954년 3월 통권 21호만에 종간되었지요. 이런 상황을 개탄한 대한교과서주식회사 사장 김기오는 소설가 오영수, 평론가 조연현과의 만남에서 "독립국가에 문예지가 없다는 것은 더 없는 수치요, 문화적 두뇌마비다."라며 문예지 창간 의지를 내비쳤고, 두 문인은 이에 적극 참여할 뜻을 밝혔습니다.



품   명   자유문학  창간호크   기   14.5*20.5주   기    1956년 6월 창간(創刊)된 문예지. 한국(韓國) 자유(自由) 문학자(文學者) 협회(協會)의 기관지(機關紙)로 창간(創刊)된 것인데, 1960년 6월 기관지(機關紙)의 성격(性格)을 벗어나 김 광섭(金珖燮) 발행(發行)의 독립(獨立)된 잡지(雜誌)로 되었음. 1963년 8월 통권 71호로 종간되었음

품   명   신동아 (新東亞)2015.10.청.40구크   기    소화8.10년주   기    1931년 11월 창간하고 1936년 8월에 〈동아일보〉의 일장기말소사건으로 강제 폐간되었다. 동아일보사의 잡지로서 1964년 9월 속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민중의 표현기관으로 민족주의 표방, 민주주의 지지, 문화주의 제창 등을 3대 근본취지로 내세웠다. 정치·경제·사회·학술·문예·과학·운동·연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특히 국내외 정세를 해설·비판하는 역할을 했다. 1987년 박종철고문치사 사건과 이후락증언 특집을 냈을 때 월간잡지 사상 처음으로 40만 부가 매진되기도 했다. 1992년 현재 국판 720쪽 안팎으로 늘려 발행하고 있으며, 독일의 〈슈피겔〉, 프랑스의 〈렉스프레스〉 등의 종합주간지와 독점계약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