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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古文書)

혼인제가(婚姻諸家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15. 12. 6.
<내용> 서로 혼사를 맺은 家門 間인 ① 安東 權正嚴, ② 載寧 李銓秉, ③ 安東 權煥, ④ 載寧 李賢圭, ⑤ 首陽 鄭匡弼 2점, ⑥ 首陽 鄭禧元, ⑦ 盆城 許烿 3점, ⑧ 盆城  許琪, ⑨ 烏川 鄭太鎔 2점, ⑩ 晉陽 河相濟 2점, ⑪ 晉陽 河祖憲, ⑫ 晉陽  姜相八, ⑬ 晉陽 姜永煥, ⑭ 延日 鄭喆基 2점, ⑮ 咸安 趙冕奎 2점 등 15人의 간찰 22점이 첩장된 [혼인제가(婚姻諸家)] 단첩으로 상태 양호한 편이다.   
<크기> 27×37.5cm
<참고> 
⑤ 정광필(鄭匡弼), 1835~   
초명(初名) 정재형(鄭在衡), 고종(高宗) 2년 (1865) 을축(乙丑)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二等) 14위 
⑪ 하조헌(河祖憲), 1843~1923

진주인(晉州人), 자(字) 중희(仲希), 호(號) 월주(月洲), 거(居) 하동(河東) 월횡(月橫), 경복(敬復)의 후손(後孫)으로 족조(族祖)인 월촌공(月村公)에게 수학하여 문학(文學과 행의(行宜)가 사림(士林)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시정난변(時政亂變)으로 유교가 쇠퇴하고 인륜(人倫)에 무도(無道)함을 개탄하면서 모한재(慕寒齋)에서 후진을 양성(養成)하고 향약(鄕約)을 만들어 주민(住民)을 교화하여 지역사회 순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문집 4권2책이 전한다. 글은 하응로(河應魯)에게 본낸 편지가 있다.
⑭ 정철기(鄭喆基), 1842~1916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응현(應賢), 호는 옥초(玉樵). 포은(圃隱) 정몽주의 후손이다. 임술민란(壬戌民亂: 진주민란)을 겪은 뒤로부터 진주 병영(兵營)의 창고가 비게 되자 정철기가 쌀 천 석을 바쳤다. 진주 병영에서는「연일정씨의창(延日鄭氏義倉)」이라는 6글자를 고문(庫門) 밖에 써서 달았고 또 조정에 전보하니 선공감가감역(鐥工監假監役)을 제수하였다.
⑮ 조면규(趙冕奎), 1843~
고종(高宗) 4년(186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66위(9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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