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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古書)

백호선생 독서기 (白湖先生牘書記)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19. 12. 12.

품    명   백호선생 독서기 (白湖先生牘書記)19.12.10.충 고갤 구  10

윤휴(尹鑴.1617.광해군 9∼1680.숙종 6)    조선 중기 학자. 남인(南人)의 거두(巨頭). 자는 희중(希仲), 호는 백호(白湖)ㆍ하헌(夏軒), 본관 남원(南原). 대사헌 효전(孝全)의 손자. 어려서부터 경서(經書) 연구에 자주 비판적인 학풍을 이루어 당대를 일시 풍미케 했다. 주자(朱子) 학설과도 대결하여 <중용(中庸)> <대학(大學)> <효경(孝經)> 등의 장구(章句) 및 주(註)를 고치고, 효종 초년에 이기설(理氣說)을 저술하여 유가(儒家)의 정통인 이퇴계(李退溪)ㆍ이율곡(李栗谷)의 이기설(理氣說)을 반대,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효종 때 자의(咨議)ㆍ진선(進善)에 천거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송시열(宋時烈)과도 친교가 두터웠으나, 현종 초 효종의 상중(喪中)에 안조의 계비 조씨(趙氏: 莊烈王后)의 복제문제(服制問題)를 둘러싸고 허목(許穆)ㆍ윤선도(尹善道)와 함께 송시열의 예론(禮論)을 통박, 서인(西人) 정권의 전복을 꾀하자 송시열과 원수가 되어 사문난적(斯文亂賊)의 낙인을 받았다. 숙종 초에 이르러 송시열의 예론이 배척되게 되자, 허적(許積)ㆍ허목(許穆) 등 남인(南人)이 득세, 송시열과 그의 일당이 물러나고 윤휴는 대사헌ㆍ이조판서 긍의 요직을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다. 조정에 있기를 6년간 여러 번 밀소(密疏)를 올려 호포법(戶布法)ㆍ상평제(常平制)의 실시를 주장하여 전정(田政)의 개혁을 꾀했고, 체부(體部)의 설립, 전차(戰車)의 제조 등을 주장하여 북벌(北伐)을 청했으나, 하나도 시행되지 않았다. 남인의 분열에 있어 탁남파(濁南派)에 속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서인(西人)들이 집권할 때 귀양갔다가 허견(許堅)의 옥(獄)에 연좌되어 사사(賜死)되었다. 후에 죄가 씻겨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白湖先生讀書記.


尹휴(朝鮮) 著.판사항油印本.발행사항京城:安藤幽乾,昭和10年(1935).형태사항10卷3冊, 1匣:四周單邊, 全郭 21.1 x 14.7 cm, 無界, 半葉 13行 29字, 註雙行;26.1 x 18.3 cm.일반주기尹휴(1617-1680)- 本貫: 南原 字: 希仲 號: 白湖, 夏軒序: 時先生歿後二百五十五年甲戌(1934)孟冬也後學豊山洪承均謹書.跋: 乙亥(1935)正月日八代孫(尹)臣煥謹書.刊記: 昭和十年(1935)三月六日發行.紙質: 洋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