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명 [광릉세고(廣陵世稿)]
크 기 15.3×22.2cm
시 대 光武十一年
주 기 光武十一年 徽文館 발행 [광릉세고(廣陵世稿)] 연활자본 2卷 單冊으로 충청남도 당진에서 대대로 살았던 광주 안씨 주부공파(主簿公派) 안성(安省.?~1421), 안민학(安敏學.1542~1601), 안로(安輅.1635~1698), 안세광(1683~1764), 안기원(安基遠.1825~1896), 안정원(安鼎遠.1831~1900) 등 6人의 글을 엮어 1907년에 펴낸 문집이며 보존 상태 양호하다.(본문 102p)
<참고> [광릉세고(廣陵世稿)]
충청남도 당진에서 대대로 살았던 광주 안씨 주부공파 여섯 사람의 글을 엮어 1907년에 펴낸 문집. 『광릉세고(廣陵世稿)』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신평면 일대에 대대로 살아온 광주 안씨(廣州安氏) 주부공파(主簿公派)출신 6인의 글을 묶은 문집이다. 안성(安省)[?~1421]은 관향(貫鄕)이 광주(廣州)로 기(器)의 아들이며 시호(諡號)는 사간(思簡)이다. 「풍애 애도문(楓崖哀悼文)」으로 알려진 안민학(安敏學)의 6대조가 된다. 고려 말에 태어나 1380년(우왕 6)에 성균관 진사에 올랐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강원도 관찰사를 제수받을 때에 태종 친필 교지를 받은 것은 유명한 일이다. 여러 곳의 관찰사와 평양 감사 등을 지냈다. 『광릉세고』에 『설천집』[시 5수]이 전한다. 안민학(安敏學)[1542~1601]은 조선 중기의 학자,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이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자는 습지(習之), 호는 풍애(楓崖)이다. 「풍애애도문」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광릉세고』에 『풍애집』 시 107수, 문(文) 7수가 전한다. 안로(安輅)[1635~1698]는 풍애의 증손이다.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광릉세고』에 묘지명(墓誌銘)이 전한다. 안세광[1683~1764]은 자는 회지(晦之), 호는 구봉(九峯)이다. 1721년에 진사에 올랐으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광릉세고』에 『구봉집』[시 154수]이 전한다. 안기원(安基遠)[1825~1896]은 자는 선호(善浩), 호는 방산(方山)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다. 의금부 도사를 지냈다. 『광릉세고』의 『방산집』에 시 313수, 문 1수가 전한다. 안정원(安鼎遠)[1831~1900]은 안기원의 동생이다. 음직으로 의금부 도사를 지냈다. 『광릉세고』에 『애석집』[시 158수, 문 2수]이 실려 있다. 엮은이의 발문(跋文)에 안성의 『설천집(雪泉集)』, 안민학의 『풍애집(楓厓集)』, 안로의 『처사집(處事集)』, 안세광의 『구봉집(九峯集)』을 묶어서 『광릉세고』 전집(前集), 안기원의 『방산집(方山集)』, 안정원의 『애석집(厓石集)』을 묶어 『광릉세고』 후집(後集)으로 편찬하고, 전후집을 묶어 『광릉세고』라 하였다. 『설천집』에는 시 5수, 『풍애집』에는 시 107수, 문(文) 7수, 『처사집』에는 문 1수, 『구봉집』에는 시 154수, 『방산집』에는 시 313수, 문 1수, 『애석집』에는 시 158수, 문 2수가 있어서 도합 시 737수, 문 11수가 실려 있다. 전통적 간행 형태에서 현대식 인쇄 형태로 바뀌는 시기의 전적(典籍)으로, 인쇄 및 출판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이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고서(古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례(家禮)] (0) | 2024.09.03 |
---|---|
이충무공전서 7-14 하 (1) | 2024.02.15 |
임충민공실기 의병 (0) | 2024.02.15 |
권선문 (0) | 2024.02.11 |
[이십일도회고시 二十一都懷古詩] (1) | 2024.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