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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장 이야기한줄 수졸재 (守拙齋)

[스크랩] 강원도 영월과 우리의 역사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07. 3. 19.


▲강원도 영월군에 위치한 선돌-서강의 푸른 물과 어우러져 마치 한국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하여 일명 신선암이라고 부르는 이 바위는 70m나 된다고....






▲단종대왕에게 충절을 받친 신하들의 위판을 배향한 배식단사(配食壇祠)






▲박충원 정여각(방충원이 영월군수로 있을 때 단종(端宗)이 꿈에 나타나 묘(墓)를 찾아 달라고 하므로
암장되었던 묘를 찾아 수축(修築)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단종대왕 능으로 가는 길...






▲ 단종대왕 능- 장릉  






▲강원 영월군 서면 옹정리 선암마을은
동강 만큼이나 아름다운 서강이 휘돌아 흐르는 강마을인데
신비스럽게도 한반도를 빼닮았다.






▲청령포-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어 17세에 죽음을 맞은 단종은 위양중 거처하던 곳이다.







▲관음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면 천길 낭떠러지 아래 영월 서강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곳은 강등된 단종의 이름을 따 '노산대'라 부르며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주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다.







▲김병연(金炳淵) 방랑시인 김삿갓의 초상화입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묘






▲방랑시인 김삿갓의 묘

 

청령포 : 陸地孤島
강원 영월군 남면(南面) 광천리(廣川里)
2002년 10월 16일 날씨 좋음


배로 건너 간다. 두사람을 태우고...
건너 갈때도, 올때도....편하다



↓ 건너다 본 청령포의 단종 유배지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안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 왕방연






올 봄도 청령포엔 물빛이 푸르러라
이 밤도 자규루에 두견이 슬피 운다
아, 세월 덧없이 흘러 한마저 씻겼는가.

    달뜨는 저녁 날에 루 위에 오르지 말아
    저 북천을 바라보고 사무쳐 오열하며
    피 토해 절규를 하던 어린 님 가련하다.

    천년 늙은 솔이 허리 굽혀 읍을 하고
    청태 낀 바윗돌에 눈물흔적 서렸어라
    아무리 세월 지나도 쌓인 사연 서럽다.

    휘돌고 감아 도는 물굽이 바라보며
    님 그려 찾아 건넌 충절 또한 물빛일세
    흘러라, 흘러 흘러라 옛이야기 싣고서.

        - 자경 전선구


 



    산비둘기

    아주 청청한 심장속으로 파고 들어도
    씻기지 않는 핏자국

    그런 우리의 애닲은 삶
    그 지평위에 뿌려진 슬픈 한의 목소리로
    구구구구구구
    간장을 녹이는 산비둘기 울음 운다

    걷고 또 걸어도 우리들 삶의 지평위에는
    뚝 뚝 뚝 떨어 지는 피자국 뿐이어서
    산비둘기가 저리도 애닲으게 우는가
    구구구구구구

      임찬순 시집 산맥을 넘는 바람 중에서


 

      모자

      어머니의 등은 평화
      평화를 덮고 한 아이가 잠들어 있다.
      몇 세월이 지난 뒤
      흰 낮달이 된 어머니가 오늘은
      내 등에 업혀 다니신다
      하늘과 땅 사이가 저리도 가까워서
      귀 기울이면 얘비야 길 조심하여라
      바람소리 속에서 들려 오는 음성이 있다

          구곡시 동인지 창간호 동행중 - 최현





 

창밖에 혔는 촛불 눌과 이별 하였 관대
눈물 흘리며 속타는 줄 모르는고
우리도 저 촛불 같아야 속타는 줄 몰라라

李 塏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중에서 나온 뒤로   一自寃禽出帝宮
      외로운 몸 쪽그림자 푸른 산을 헤매누나. 孤身隻影碧山中
      밤마다 잠 청하나 잠들 길 바이 없고 假眠夜夜眠無假
      해마다 한을 끝내려 애를 써도 끝없는 한이로세. 窮恨年年恨不窮
      울음 소리 새벽 산에 끊어지면 지는 달이 비추이고 聲斷曉岑殘月白
      봄골짝에 토한 피가 흘러 떨어진 꽃 붉었구나. 血流春谷落花紅
      하늘은 귀먹어서 저 하소연 못 듣는데 天聲尙未聞哀訴
      어쩌다 서 이 몸 귀만 홀로 밝았는고. 何奈愁人耳獨聰

          자규시 : 단종(1441-1457)

↓ 단종이 나무 가지 사이에 앉아 놀았다(?)는 관음송의 밑 부분


 

      달 밝은 밤 자규새 울면 月白夜蜀魄
      시름 못잊어 다락에 기대었네 含愁情倚樓頭
      네 울음 슬퍼 내 듣기 괴롭구나. 爾啼悲我聞苦
      네 소리 없으면 내 시름 없을 것을 無爾聲無我愁
      이 세상 괴로운 이에게 말을 보내 권하노니 寄語世上苦勞人
      춘삼월 자규루(子規樓)에는 삼가 부디 오르지 마소. 愼莫登春三月子規樓

          영월의 관풍매죽루(觀風梅竹樓)에 올라앉아 그 적적하고 침울함을 달래며...




↓ 관음송의 중간 부분


 

      단종대왕神

      민간과 무속에서 받드는 君王神의 하나. 일명 노산군지신(魯山君之神)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영월읍에 있는 영모전(永慕殿) 서낭당을 비롯하여 능동 서낭당, 상동면 녹전리, 구래리, 하동면 내리, 어평리 등과 정선군 여량리 및 태백산 일대의 서낭당에서 모셔지고 있다.

      영모전은 원래 神木 하나만 서 있던 서낭당이었으나 현재는 단청을 한 기와집에 단종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다. 영월읍 보덕사(報德寺) 등의 절에서도 단종 영정을 모시고 있는데, 그림에는 백마를 탄 단종과 그 앞에 머루 바구니를 들고 있는 추충신(秋忠臣)이 같이 그려져 있는데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온다.




↓ 관음송 상단


 

      추충신의 이름은 익한(益漢)으로 한성부윤을 지냈던 사람이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외롭게 관풍헌(觀風軒)에 있을 때 산머루를 따다가 진상하고 자주 문안을 드렸다.

      그날도 예외없이 산머루를 따가지고 단종에게 진상하려고 영월부중으로 내려오는 길인데, 연하리(蓮下里) 계사폭포에 이르렀을 때, 곤룡포에 익선관(翼蟬冠)으로 정장을 하고 백마를 타고 유유히 태백산 쪽으로 향하여 가는 단종을 만나게 되었다. 추익한이 단종에게 "대왕마마, 어디로 행차하시나이까?" 하니, "내가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오." 라고 말한 뒤 홀연히 단종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자기 눈을 의심하면서 급히 부중에 들어와 단종의 거소에 가보니 단종은 이미 변을 당한 뒤였다. 추익한은 다시 단종을 만났던 계사동까지 와서 단종을 따라 죽었다. 이리하여 추익한도 단종과 함께 太白山신령이 되었다.




↓ 금표


 

      또다른 신령이 된 충신이 있었는데,

      그는 충의공(忠毅公) 엄흥도(嚴興道)이다. 단종이 변사하였을 때 세조가 두려워 누구 하나 돌보지 않자 당시 호장(戶長)이었던 그는 즉시 서강(西江)과 동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달려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미리 준비한 관에 봉안하여 영월군 서북쪽 동을지산(冬乙旨山)에 암장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흥미로운 점은 태백산 일대의 서낭당 뒤에는 가시가 있는 엄나무가 서낭목으로 서있는 곳이 많다. 엄충신은 죽어서까지 단종을 보필하기 위하여 그 충절의 넋이 사후에 엄나무가 되어 단종이 계신 서낭당을 지키고 있다고 믿고 있다.




↓ 푸르고 푸른 강


 

      정선군 여량리에도 노산군을 모신 서낭당이 있다.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이 심심하여 연에 글을 써서 띄웠는데 그것이 바로 여량리에 있는 느티나무에 걸렸다.

      연을 내려보니 단종의 친필이 있는지라, 그 걸린 나무를 단종의 신체로 신격화하여 서낭당을 지었다. 그런데 모시고 난 그뒤로부터 여량리 일대에 괴질이 퍼져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던 중 한 도사가 지나가다가 "이 마을은 저 서낭 때문에 화를 당하는 것이다. 노산군으로 강등시킨 것을 단종으로 모셨기 때문에 그 죄로 괴질이 퍼진 것이니 도로 노산군지신으로 제사를 지내면 동네가 편안할 것이다." 라고 충고하여 그 말을 좇으니 동네가 무사태평하였다고 한다.




↓ 청령포 도선장


 





 




↓ 노산대 - 강 건너편에서

단종 죽던 그 날에

시녀와 종인들이 다투어 고을 동강(東江)에 몸을 던져 죽어서 뜬 시체가 강에 가득하였고, 이날에 뇌우가 크게 일어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분별할 수 없고 강렬한 바람이 나무를 뽑고 검은 안개가 공중에 꽉 끼어 밤이 지나도록 걷히지 않았다

지금은 다만 그림자 흔들며 그날을 잊었노라 한다.


 




↓ 그 때의 일을 모두 알고 있다는 억새.....뭐라...고 말은 하는데 알아 들을 수는 없고


 




↓ 가을 억새와 함께 핀 할미꽃


 





 




↓ 패랭이


출처 : 휴양지 우리마을
글쓴이 : 우리마을 촌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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