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명 원주이씨세보2권2책(原州李氏世譜)
크 기 23.5*34.5쎈치 간기 1769년 목활자
주 기 숭정기원후3 己丑季春引成于砥平廣巖의간기가있고 걷표지가없다
서 문
原州 李氏 己丑譜 序文
우리고장의 큰선비 이덕후(李德 : 교리공파 25세)가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慶州李氏에서 原州로 이관(移貫)되었고 조선 初에는 경원군 휘(諱) 반계(攀桂)가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과 함께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 뒤 子孫들이 침체되고 보계(譜系)를 얻어볼 수 없으므로 우리 집안사람(상문, 尙文 : 24세로서 孝子公)과 지문(之文) 두분 이 여기에 깊은 뜻을 두었으나 불행히 모두 죽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니 그 동생 익문(益文)이 집안사람 화징(華徵) . 구징(龜徵) 과 더불어 비로소 편집을 거쳐 보첩(譜牒) 두권 을 간행하게 되었으니 바라건대 한마디 말씀을 주어 기록하였으면 한다고 하기에 아래에 몇 마디 기록하노라 !
족보가 세상에 유행되어 오기는 이미 오래 되었다. 주(周)나라 때 소사(小史)에게 명하여 나라 일의 기록을 맡기었는데 이것이 바로 족보의 전신으로 그 인심을 관리하고 풍속을 후(厚)하게 하는 도(道)에 대한 관계가 깊었다.
요사이 양반 집에서 친족이 번성하고 재력이 넉넉하면 반드시 그 세계를 기록하고 그 소목(昭穆)을 밝혀 책으로 엮고 질로 만들어서 인쇄에 부쳐 펴냄으로 한번 책을 펼치면 내력의 근원과 지파의 정연함을 훤하게 알 수 있으니 이는 마땅히 민덕이 두터워지고 풍속이 크게 달라져야하는데도 어찌하여 족보가 잘될수록 풍속은 나빠져서 힘들여 펴낸 일이 헛일이 되고 함께 족보에 오른 친족들이 마치 월(越)나라 사람들이 진(秦)나라 사람 보는 듯 하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아! 친족끼리 화목함이 근본이요 족보를 만드는 것은 말단의 일이다. 그 말단만을 들고 근본을 모른다면 그런 족보를 어디에다 쓰겠는가? 지금 귀 문의 족보를 보건대 이와는 다르다 . 여러 대가 부진하고 자손이 쇠퇴하여 동서로 흩어져 마치 새벽 별이 흩어져 있는 것 같으나 멀고 가까운 종족에게 알리고 가계를 거두어 모아서 전날에 갖추지 못하였던 것을 하루아침에 완전한 책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 뜻이 갸륵하여라!
'고서(古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감요해(通鑑要解)상하2책 (0) | 2007.09.03 |
---|---|
삼경사서정문 중 書傳상하1책 (0) | 2007.09.03 |
원주이씨족보8책중6책 (0) | 2007.09.02 |
따지본 소설 탄금대 (0) | 2007.08.26 |
향음주례 (0) | 2007.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