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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화(古書畵)

동춘당(송준길)유묵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08. 5. 18.

 

송준길 [, 1606~1672]
요약
조선 중기 문신 겸 학자. 송시열 등과 함께 북벌 계획에 참여했으며 서인에 속해 분열된 서인 세력을 규합하는 데 힘썼다. 학문적으로는 송시열과 같은 경향의 성리학자로서 특히 예학에 밝고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본관 은진
동춘당
별칭 자 명보, 시호 문정
주요저서 《동춘당집》 《어록해》
주요작품 〈충렬사비문〉 〈윤영순절비문〉
회덕 동춘선생 고택 / 대전 대덕구 송촌동. 대전유형문화재 제3호.
본문

본관 은진(). 자 명보(). 호 동춘당(). 시호 문정(). 이이(김장생()의 문인. 1624년(인조 3) 진사로서 세마()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20여 년간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1649년(효종 즉위) 집의()로 재기용되었다. 송시열() 등과 함께 북벌계획()에 참여하였다가, 김자점()이 청()나라에 밀고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뒤에 대사헌()을 지냈다. 1659년 병조판서가 된 뒤 우참찬(좌참찬 겸 좨주()·찬선()을 지냈고, 영의정이 추증되었으며 문묘()를 비롯, 공주() 충현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송시열과 함께 서인에 속하여 분열된 서인 세력을 규합하는 데 힘쓰는 한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남인()의 주장을 물리치고 기년제(: 만 1년)를 관철하였다. 학문적으로는 송시열과 같은 경향의 성리학자로서 특히 예학()에 밝고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에 문집 《동춘당집()》과 《어록해()》가 있고, 글씨에 〈충렬사비문()〉(부산), 〈윤영순절비문()〉(남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