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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古書)

반계수록(磻溪隨錄) 유형원 (柳馨遠 1622∼1673(광해군14∼현종14)실학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09. 8. 23.

품    명  반계수록(磻溪隨錄)

크    기   23*32쎈치 필사본 9책완질

주    기 조선 후기 학자 유형원(柳馨遠)의 국가 운영과 개혁에 대한 견해를 담은 책으로 목판본이며 26권 1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계 유형원이 과거 응시를 단념하고 전라북도 부안군 우반동(愚磻洞)에 은거하면서 1652년(효종 3)에 쓰기 시작하여 1670년(현종 11) 완성하였다. 영조 때 양득중(梁得中) ·홍계희(洪啓禧) ·원경하(元景夏) 등의 추천으로 임금과 세자의 관심을 끌었으며, 1770년(영조 46) 왕명에 의해 경상감영에서 관찰사 이미(李)가 주관하여 간행하였다. 저자는 성리학의 근본 문제로부터 신선술(神仙術)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지금은 이 책만 전해진다. 저자는 발문에서 학자가 평소 도(道)를 강구하고 사물은 대체(大體)만 알면 된다고 하는 입장을 비판하여 천지의 이(理)와 성인의 도(道)가 결국 사물을 통해 구현된다고 함으로써 이 저술의 의미를 밝혔다. 제목은 그때그때 자유롭게 기록하였다는 뜻이지만(隨錄) 매우 정제된 체제로 되어 있다.

  개혁안의 주제는 권1~8은 전제(田制), 권9~12는 교선(敎選), 권13~14는 임관(任官), 권15~18은 직관(職官), 권19~20은 녹제(祿制), 권21~24는 병제(兵制), 권25~26는 속편(續篇)으로 구성되었다. 각 주제별로 절반은 중국 ·한국의 사례를 모아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 <고설(攷說)>이므로, 현실 개혁안은 13권으로 이루어졌다. 실록 등에서 이 책을 13권이라고 설명한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말미에는 군현제(郡縣制)에 대한 내용이 보유(補遺)로 붙어 있으며, 그 밖에 이미 ·오광운(吳光運) 등의 서문 ·발문과 저자의 간단한 발문이 붙어 있다.

  맨 앞의 ‘전제’는 토지소유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서, 일부 계층이 대토지를 소유한 데 사회 모순의 근원이 있다고 보고 균전제(均田制)를 내세워 실제 경작자에게 토지를 주어 기본생활을 보장하고 그들에게 국가방위와 재정을 담당하게 하자고 주장하였다. 즉, 양인(良人) 농민 1명에게 1경(頃)의 토지를지급하는 것을 기준으로 양반 사대부로부터 상공인·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사회분업관계를고려하여 일정한 크기의 토지를 차등 지급하고, 상속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했다. 이와 함께 농업 생산력 발전에 상응하는 상공업의 발전과, 국가 수취체계의 효과적인 운용이 실현될 수 있도록 구상했다. 조세는당시 농민이 부담하던 모든 조세를 통일하여 토지 수확량의 1/20을 징수하고, 이를 지출에 맞추어 징수하는 방식인 '양출위입'(量出爲入)에서 수입을 기준으로 지출하는 원칙인 '양입위출'(量入爲出)로 운용하도록 했다. 군역은 병농일치제의 원리에 따라, 농민 4명이 받은 4경의 토지에서 1명씩 나와 2개월을 지도록 했다. 부당하게 군역을 지거나, 군역이 생산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한 구상이었다. 상공업에 대해서는 화폐의 주조·유통에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관리통화제를 실시하고, 전국적으로 참점(站店)과 같은 상설점포체계를 구축하여 교환·유통 경제가 활성화되도록 구상했다. 저자는 전통적인 상공업 경시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농업의 발달에 따른 상품·화페 경제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교선’은 인재 교육과 선발에 대한 것으로서, 향약(鄕約)과 같은 사회조직을 통해 전체 인민을 교화하는 바탕 위에서 단계별 교육기관을 운영할 것을 주장하였다. 각 군현의 읍학(邑學)과 서울의 사학(四學)을 1차 교육기관으로, 각 도의 영학(營學)과 서울의 중학(中學)을 2차 교육기관으로, 중앙의 태학(太學)을 최고 학교로 하고, 능력에 따른 각급 학교의 천거에 의해 진학하며 비용은 전액 국가에서 담당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재등용은 폐단이 많은 과거제를 폐지하고 태학을 마친 자를 진사원(進士院)에 소속시켜 실무를 익히게 한 뒤 문벌이 아닌 능력에 따라 등용하게 하였다. 과거제 대신 천거에 의한 공거제(貢擧制)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임관’은 관료제 운영에 대한 것으로서, 실무 관직자에 해당하는 당하관(堂下官)과 지방 감사 및 수령의 재임 기관이 너무 짧은 것을 문제로 파악하여 그 임기를 6년 내지 9년으로 늘리자고 하였다. 또한 그들에게 예하 관인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공로에 대해서도 승진보다는 다른 보상을 주어 전문 관료제를 운영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관료의 봉급을 증액시키고, 서리직(胥吏職)에도 종래와 달리 봉급을 지급한다는 방안이었다.  ‘직관’은 통치 기구에 대한 것으로서, 중점은 비변사를 폐지하여 의정부에서 육조(六曹)로 이어지는 행정체계를 복구하고 3정승 중에 영의정만을 두어 행정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또 필요 이상의 관서를 폐합하고 지방관의 권한을 늘리자고 하였다. ‘녹제’는 녹봉에 대한 것으로서, 고위 관인부터 서리 ·관속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급여를 주고 부정을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 ‘병제’는 국가방위에 대한 것으로서, 병농일치를 원칙으로 하여 토지 4경(頃)을 경작하는 농민이 정병 1명과 보인(保人) 3명을 내되 사(士)와 관리는 군역을 면제하는 것이었다. 또한 방어시설과 무기를 정비하고 군사훈련을 정기적으로 할 것을 주장하였다. 즉, 오위 진관체제를 기본으로 하여 중앙군과 지방군을 편성하되, 이를 병농일치제에 따라 운영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방어시설인 성지를 구축하고 무기를 개조하며, 군사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여 항상 방어태세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 밖에 ‘속편’에서는 경연 ·의관 ·주택 ·수레 등 다양한 주제를 논하였다. 여기서는 노비 세습제를 폐지할 것 등 이 주장되었다. 보유에서는 토지 면적을 기준으로 군현제를 정비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책에서 제기하는 개혁안은 〈경국대전〉에 규정된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여, 조선 봉건사회를 지탱하던 사회경제적 양축인 노비제와 지주전호제를 혁파하고 소농경제에 기반한 국가체제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으로, 소농민·상인등 피지배층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한층 자유롭고 평등하게 보장하는 혁명적구상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개혁에대한 이론적 근거를 숱한 참고자료를 활용하여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사물을 사변적으로 이해하던 주자학적 사유방식을 지양하고, 실사(實事)의 현상과 본질을 실리(實理)라는 차원에서 관찰·분석하는 이해방식을 확립한 저자의 실사구시적 변법사상에 바탕한 것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위와 같은 개혁안에 대해 매우 세밀한 부분까지 고려하여 대책을 제시하였다. 여러 개혁론은 토지소유관계의 개혁을 초점으로 하며, 그것은 그 뒤 이익(李瀷) ·정약용(丁若鏞)으로 이어지는 중농주의적 실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논점이 되었다. 대토지 소유자의 반발에 대해 ‘극형으로 다스린다’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처럼 실제 시행하기에는 많은 약점을 지닌 것도 사실이지만, 저자가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일생을 바쳐 탐구한 성과로서 후대의 학자에게 사회 개혁에 대한 열정을 고취하고 학문적 지표를 제시하였다.

<두산대백과사전> 참고

 


유형원 묘표


전면 탁본


후면, 측면 탁본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묘표 탁본

  • 찬(撰) :홍계희(洪啓禧)       연대:1768년(영조44)       소재지: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석천리   

  유형원 (柳馨遠  1622∼1673(광해군14∼현종14)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이다.  아버지는 예문관검열 흠이고, 어머니는 참찬 이지완(李志完)의 딸이며, 부인은 부사 심은(沈誾)의 딸이다.  외숙 이원진(李元鎭)과 고모부 김세렴(金世濂)에게 사사하였다. 선생은 일체의 관직을 사퇴하여 오직 향리의 농민들을 지도하고 그들의 구휼(救恤)에 전념하였다. 당시 임진왜란, 병자호란 후의 어려운 국정을 회복하고자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저술하였다. 호조참의, 찬선(贊善)에 추증되었고, 부안 동림서원(東林書院)에 배향되었다.
   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관료들은 당쟁에 몰입해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양반 지식인, 유형원은 백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1653년(효종 4) 선대의 사패지지인 부안현 우반동(愚磻洞)에 정착하였다. 그의 호 반계(磻溪)는 그 동리 이름이다.  그에게 있어서 귀농은 민초(民草)들의 삶 속에서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면서 사회를 개혁할 필생의 대작인 '수록(隨錄)'의 집필을 위한 대반전이었다. 그는 부안으로 갈 때 전적(典籍) 1만여권을 가지고 갔다.
   1654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를 단념하고 칩거하여 학문 연구와 저술에 전심하면서 수차 전국을 유람하였다. 1665,1666년 두 차례에 걸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농촌에서 농민을 지도하는 한편, 구휼(救恤)을 위하여 양곡을 저축하게 하고, 큰 배 4,5척과 마필(馬匹) 등을 비치하여 구급(救急)에 대비하게 하였다.
    제도개편을 위한 [반계수록] 집필에 몰두한지 18년 뒤인 1670년에 26권을 집필하였다. 그로부터 3년 뒤 52세로 유형원은 세상을 뜬다.  일상의 삶과 생각을 적어나가는 수필(隨筆)처럼 반계선생의 [수록]은 단지 겸손한 표현이지 사실상 정치,경제,군사,정부 등 국가 전체에 대한 개혁안이다. 제도에 대한 폐단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함에 역대 문헌과 사상가의 견해를 자세히 고증하고 현실에 근거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방법론과 개혁 사상은 가히 실학의 아버지라 칭송할 만한 것이다.
   [반계수록]에 나타난 그의 사상적 특징은 부강한 나라, 부유한 백성을 지향하면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따라 토지는 국가가 공유하고 농민들에게 일정량의 경지를 나누어주는 균전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그밖에 병농일치의 군사제도를 강조하였다. 또한 과거제의 폐지, 관료제의 개선 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실제로 실행되지는 못하였으나, 당시 재야 지식인들의 이상론이 되었으며, 후학자 이익(유형원의 외삼촌 이원진-하멜 표류당시 제주목사-의 당질)과 안정복 등으로 이어진 실학에 큰 영향을 주었고 뒤에 정약용 등에 이르러 실학이 집대성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의 묘소 바로 옆 곡장 안에 아버지 유흠의 묘소가 있다

 

 

 
   
   
   
   
   
   
   
   
   
   
   
   
목차 卷1:田制上(分田定稅節目, 雜稅), 卷2:田制下(打量出軍出稅式, 田制雜議附, 諸本周尺附), 卷3:田制後錄上(鄕里, 戶籍, 漕運, 經費, 會計, 別賦. 常平社倉, 荒政, 堤堰, 裁植), 卷4:田制後錄下(錢幣, 麤布, 空場, 國朝名臣論弊政諸條附), 卷5:田制攷說上(經傳所論井田之論, 秦漢以後井田議論), 卷6:田制攷說下(後魏北齊隋唐田制, 高麗田制, 國朝田制附), 卷7:田制後錄攷說上(鄕黨, 戶口, 務農, 樹藝, 賦稅, 水利, 聽民去狹就寬, 常平義倉救荒), 卷8:田制後錄攷說下(錢貨, 附楮幣, 本國錢貨說附), 卷9:敎選之制上(鄕約, 鄕約事目, 學規, 學校事目), 卷10:敎選之制下(貢擧事目, 鄕飮酒禮附, 鄕射禮缺, 諸學選制附), 卷11:敎選攷說上(三代敎人取士之法, 後賢所論述, 鄕飮酒攷附), 卷12:敎選攷說下(漢以下至今取人之法, 本國選擧制附, 選擧議論附), 卷13:任官之制(仕滿遷轉, 開政, 薦擧, 自代, 勿限門地, 外任, 參謁, 褒貶, 收敍, 議諡, 追贈), 卷14:任官攷說(周漢以後任官之法, 考績), 卷15:職官之制上(京官職, 外官職), 卷16:職官之制下(職官因革事宜), 卷17:職官攷說上(經傳所論職官之制, 秦漢以後職官之制, 尙書中書省樞密院沿革附), 卷18:職官攷說下(外官, 官數, 品秩, 封爵, 總論, 吏隷附), 卷19:祿制(京官록, 京吏隷祿, 京各司公廨所需, 外官祿公用公廨所需附, 外吏隷祿田附, 京外一歲支費), 卷20:祿制攷說(經史所論班祿之制, 漢祿制, 後漢祿制, 晋祿制, 後周祿制, 唐祿制, 宋祿制, 大明祿制, 高麗祿制, 國朝祿制), 卷21:兵制(五衛及諸衛, 訓鍊都監, 各道營鎭鎭官, 諸色軍士, 復戶, 本國古今軍數附), 卷22:兵制後錄(城池, 兵車, 牧馬, 郵驛), 卷23:兵制攷說(制兵, 講武, 戰守), 卷24:兵制後錄攷說(城池, 兵車), 卷25:續篇上(朝禮, 經筵講儀, 燕禮, 昏禮, 喪葬, 陵寢, 坐衙, 巡宜, 女樂優戱, 供饌, 衣冠, 言語, 度量, 製造, 家舍, 道路橋樑, 用車, 藏氷, 僧尼巫覡淫祠), 卷26:續篇下(奴隷, 奴隷攷說, 籍田, 籍田放說, 養老, 養老攷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