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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사.문학 .교육

한국 최초불어소설 어느한국인의 삶 과 주변 부산출신 서영해徐嶺海·1902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09. 8. 27.

품      명   한국역사소설 어느한국인의삶과 주변(불어소설)徐嶺海·1902~?). 독립운동사 연구가
크      기   12*18.5쎈치  저자 서영해 1929년 (음성기록역사관소장)
주      기    한국의첫불어소설로서영주동 「서약방」주인인 서석주는 10남매를 두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아들은 넷째 아들인 서영해였다. 1913년 영주동 서약방에서 태어난 서영해는 부산 공립 보통학교(영주동)를 나온 뒤 일찍 개화사상에 눈을 떠서 해외로 나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혔었다.
1919년 서영해는 16세의 어린 나이로 집을 뛰쳐나와 혼자 중국 상해로 나섰을 만큼 대담한 소년이었다. 서영해는 그 무렵 상해 임시정부 외무총장을 맡고 있던 김규식 박사를 찾아가서 앞으로의 처신에 대한 도움을 청했다. 김규식은 동래 출신으로서 일찍부터 그의 부친인 서석주와 친교가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서영해는 애초 미국 유학을 바랐었다.
그러자 김규식은 그런 서영해를 말리면서 그 무렵 세계 외교 무대 중심을 이루고 있던 프랑스로 갈 것을 권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서영해에게 영어를 배우느니보다 프랑스말을 배우도록 타일렀다. 서영해는 김규식의 권고를 받아들여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로 가는 여권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중국인 양자가 돼서 국적을 바꾸었다. 그런 다음 그는 김규식의 알선으로 프랑스로 건너가서 파리에 정착하게 됐다.
서영해는 파리에서 프랑스말을 배우기 위해서 18세 나이로 프랑스 소년들이 다니는 소학교에 입학하기까지 했다. 서영해는 이름난 저널리스트가 돼 보겠다는 꿈을 이룩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지탱해 가면서 어렵사리 고학한 끝에 드디어 파리에 있는 어느 일간 신문 기자 채용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서영해는 동양인으로서 유럽 인기 기자들과 어울려도 아무 손색이 없는 취재 활동을 벌여 나갔다. 그래서 프랑스 국내에서도 실력이 출중한 기자로 이름이 알려졌고 중동 방면에 수시로 특파되어 국제보도진으로 진출했다.


서영해를 찾아냅시다 역사를 다시 본다

2006/06/04 10:14

 

복사 http://blog.naver.com/sunonthetree/110004866637

최근 우리 당대의 내로라 하는 두 소설가가 19세기 말에 프랑스로 건너간 한 조선여인을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 중이거나 집필을 완료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 분은 여류 소설가인 신경숙씨, 다른 한 분은 남류(실례. 이런 말은 없지만 남녀평등을 위해 갑자기 만들었다) 소설가인 김탁환 씨, 그 두 소설가가 공교롭게도 19세기 말에 조선에 왔던 한 프랑스 외교관과 사랑을 하게 돼 그를 따라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그곳 사교계에서도 활동하다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 온 여인(이름은 작가에 따라 다르다. 한쪽은 리진이라고 했고 다른 한쪽은 리심이라고 했단다)의 슬픈 삶을 다루는 것이다. 사료가 풍부하지 않은 만큼 많은 부분이 상상력으로 채워질 것이지만 이 두 소설을 통해 19세기, 20세기 초의 프랑스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한불수교 120주년. 곧 1886년 6월 4일에 조선왕국과 프랑스가 수교한 지 120년이 되는 것인데, 120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체결 전에 교섭을 끝내야 하는 만큼 이번 주에 교섭이 끝났다고 본다면 마침 이번 주가 그 수교주간에 해당된다. 아래 저래 이번 주는 프랑스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에서 독립운동가로서, 문필가로서, 언론인으로서, 작가로서 활약한 최초의 한국인이 생각난다.

 

그의 이름은 서영해(徐嶺海)다.

[출처] 서영해를 찾아냅시다|작성자 동산 현관

12*18.5쎈치  저자 서영해 1929년 (음성기록역사관소장)

 

 

 

 

 

 

독립운동가 서영해


서영해(오른쪽)와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프랑스에서 함께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