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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예절문화

『목민심서』「속리(束吏)」의 송덕비(頌德碑)와 기악비(紀惡碑)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10. 7. 14.

송덕비(頌德碑)와 기악비(紀惡碑)


서울의 어떤 구청장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직후, 그 구의 문화원에서 구청장의 덕을 칭송하는 ‘송덕비’를 세웠다고 설왕설래하는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송덕비나 ‘선정비(善政碑)’는 옛날부터 세웠던 역사가 있습니다. 다산의 『목민심서』에도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다산은 기본적으로 그런 일은 가능한 삼가야 한다는 뜻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정말로 선정을 베풀고 큰 덕을 이룩해 칭찬받을 목민관이 전혀 없지야 않았지만, 대체로는 별로 큰 덕을 베풀거나 선정을 하지도 못한 목민관 주제에, 자신의 입김으로 그런 것을 세우는 경우가 많아서였습니다.

오히려 탐관오리이거나, 착취에 뛰어난 목민관들이 자신의 재물로 비를 세우거나, 주민들에게 강요해서 세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입니다. 이번 동작문화원의 송덕비는 어떤 경우인가를 알길 없으나, 신문에서 떠드는 내용으로는 무언가 명쾌하지 못한 대목이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조선시대라면 어느 정도 도덕성도 살아있고, 예의와 염치도 있던 때인데, 송덕비는 세울 일이 아니라는 다산의 주장이 있었다면, 더구나 요즘처럼 예의나 염치는 찾을 길 없고 패악하기 그지없는 세상에서 송덕비를 세운다는 것은 생뚱맞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침 요즘 신구의 목민관들이 바뀌고 교체되는 때여서, 행여라도 송덕비를 세우려면 다산의 『목민심서』「속리(束吏)」조항 읽기를 권장합니다. 참다운 목민관이었다면 자신이 거느렸던 공직자들이 부패에 연루되고 주민의 인권이나 자유에 침해를 가한 사례가 있었다면 이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기악비(紀惡碑)’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목민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패악한 행위를 했던 공직자들의 소행을 밝혀 기악비에 새겨 관청의 뜰 앞에 세워, 다시는 그런 공직자가 나올 수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악비야 의미가 있지만, 송덕비야 진정성은 부족하기 마련이니 그런 일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 다산의 뜻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송덕비·공적비·기념비·선정비 등 다양한 찬양비들이 있었던가요. 때가 지나면 흉물로 변해버리는 그런 짓을 요즘에도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고리대금업자나 졸부들이 쥐꼬리만 한 희사금을 내고 유애비(遺愛碑)·시혜비(施惠碑) 등을 세워 길가의 환경이나 오염시키는 일이 요즘 같은 개명한 세상에는 없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억지춘향의 강요된 송덕비가 많았다는 다산의 뜻도 다시 새겨볼 때라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