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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古書)

임숙영(任叔英. 1576-1623) 선생의 시문집 초간 목판본 [소암선생집(疎菴先生集)] 6卷 2冊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18. 11. 24.
내용> 1635년 충주(忠州)에서 간행한 임숙영(任叔英. 1576-1623) 선생의 시문집 초간 목판본 [소암선생집(疎菴先生集)] 6卷 2冊 완질본으로 '崇禎乙亥(1635)... 張維'의 序, 崇禎乙亥(1635)...李敏求의 跋이 있다. 앞책 전후 몇장 부분 배접 보수 외 기타 전반적 상태 양호하다.
<크기> 21.2×30.8cm
<참고> [소암선생집(疎菴先生集)] 규장각 해제
17세기 문인 임숙영(任叔英. 1576-1623)의 시문집으로, 6권 2책의 목판본이다. 任叔英의 字는 茂叔, 號는 疎菴, 本貫은 豊川이다.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의 對策에서 주어진 이외의 제목으로 중전 柳氏 척족과 李爾瞻의 횡포를 심하게 비난하는 글을 올린 것을 試官 沈喜壽가 급제시켰다. 이를 본 광해군이 크게 노하여 삭제하도록 하였으나 三司의 간쟁과 李恒福 등의 주장으로 다시 급제하였다. 1613년 永昌大君의 誣獄 때 파직되어 집에서 지내다가 1615년에는 외방으로 쫓겨나 廣州 鳳安에 은둔하였다가 인조반정 초에 복직되었다. 권수의 張維가 1635년(인조 13)에 쓴 서문에 의하면 임숙영의 문집은 문인 權恁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李植이 刪定․編次한 것을 문인 姜興載와 忠原縣監 李倍元이 忠州에서 木板으로 초간하였다. 후에 5세손 河陽縣監 希澤이 1783년에 하양에서 拾遺를 增補․追刻하고 刓缺된 부분을 補刻하였으며, 19세기 경에 海州에서 여기에 拾遺․附錄을 증보 재편하여 목판으로 중간하였다. 권말에 있는 李敏求의 서문에서는 介潔한 임숙영의 성품과 古文 및 六朝의 四六騈儷文에 뛰어났던 문장력을 칭송하였다.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