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명 월간조선 창간호
시대 1980.4
주 기
1980년 4월에 조선일보사가 창간한 『월간조선』은 창간 당시 30∼40대의 일반인을 상대로 한 학술취향의 논문류를 많이 실어 초기에는 학자나 대학원생들의 호평을 받았다. 수준 높은 지식인의 요구에 부응하는 월간잡지가 없다는 판단 아래, 상당한 수준의 논문들을 많이 실어 대학가에서 자료로 인용되는 등 고급 잡지로서 평가받기도 하였다. 또한 주로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전반을 종합적으로 정리·분석·평가하고 시사적인 문제를 그 달의 특집으로 꾸며 심층취재를 통한 문제점 파악에 주력하다가, 1982년 3월호부터 다큐멘터리와 르포 종류의 글을 싣기 시작하여 젊은층의 독자를 많이 확보하였다.
그러나 점차 너무 많은 독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상업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편집경향을 보여 흥미 위주의 읽을거리와 대중적인 편집내용으로 채워지면서 총 면수가 400쪽이 넘는 일반대중잡지처럼 되어버렸다
의의와 평가
이념 전선의 오른편에서 반공이념의 수호자로서 1990년대의 아젠다를 찾아가기 시작했던 『월간조선』은 ‘사상논쟁’에 치우친 기사들을 많이 게재함으로써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많아졌고, 따라서 잡지의 우(右)편향에 대한 비판이 많이 제기되었다
품 명 리더스 다이제스트 창간호
시대 1978-11
주 기 건강 생활부터 역사, 문화까지 다양하게 넘나드는 잡지로, A5 80장 정도에 갖가지 정보들을 1-4쪽 내외로 요약해서 담는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폭넓은 교양을 쌓을 수 있는 표본.
1922년 드윗 윌리스와 그의 아내 라일라에 의해서 창간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자인 드윗은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받는동안 읽을거리들을 읽으면서 이를 요약한 잡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어판은 1978년 11월부터 연강 학술 재단 (동아출판사, 현재의 두산동아)에서 월간 리더스다이제스트와 영한대역 리더스다이제스트를 발행하였으나, 2009년 12월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이 중단되었다
품 명 시사저널 창간호
시 대 1989.10.29
주 기 시사저널은 1989년 10월 20일 창간한 주간 시사잡지다. 매년 창간기념호 특집으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를 조사, 발표해 한국 사회의 흐름을 점검하고 있으며,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원 평가, 종합병원 평가 등 '평가 저널리즘'을 선보이고 있다. 2006년 6월 15일 삼성 관련 기사 삭제 사태와 관련하여 기자들의 파업과 직장폐쇄 후 일부 기자들은 《시사IN》을 창간하여 독립하였다
품 명 한겨레21 창간호
시 대 1994.3.24
주 기 《한겨레21》은 한겨레신문에서 만드는 진보적 시사 주간지로 1994년 3월 16일에 창간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뉴스와 다양한 칼럼을 싣는다. 2011년 현재 주당 유료 부수는 4만8000부, 배포 부수는 5만2000부로 시사주간지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품 명 월간중앙 창간호
시 대 1968.4
주 기
A5판, 450쪽 안팎. 1968년 4월에 창간되었으며, 발행인은 홍진기(洪璡基)였다. 1973년 1월호부터 12월호까지는 B5판 크기로 발행하다가 다시 A5판으로 변경하였다. 1980년 7월 정부의 간행물 일제정비 때 폐간당했는데, 폐간될 무렵의 분량은 550쪽이었다.
창간사에서 “겨레의 힘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하여 격조있는 재미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스스로 민주주의의 묘목을 가꾸는 원정(園丁)으로서, 또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지향하는 이상주의자로서, 그리고 건강한 생활인의 반려로서의 역할을 지향한다고 말하였다.
1980년 계엄 하에서 6월호에 실린 「전후세대가 말하는 통일전망」이 문제가 되어 7월호(통권 제14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가, 1988년 3월호로 복간되어 발행되었다. 그러나 1995년 발행중단되고 『시사월간 WIN』으로 제호가 바뀌었다가, 1999년 2월에 『시사월간 WIN』이 중앙일보에서 분사해 별도의 법인으로 설립되면서 다시 『월간중앙』으로 제호가 변경되어 발간되고 있다
품 명 뉴스위크 창간호
시 대 1991.11.6
주 기
발행사는 중앙일보 시사 미디어(중앙일보의 시사·경제잡지부문 자회사, 중앙 미디어 네트워크의 일원)이며 창간일은 1991년 10월이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중앙일보에서 직접 발행했으나 1999년에 중앙일보의 자회사인 중앙일보미디어인터내셔널로 분리되었으며 2005년에 중앙일보시사미디어에 흡수되었다. 총발행면수는 84쪽이다. 자체제작 기사도 제작한다. 뉴스위크와의 계약으로 한국내에서 뉴스위크 번역 기사와 자체 기사를 제작하고 매주 월요일에 발행한다.
현재의 제호 디자인은 2009년 6월 10일자(표지의 그림속의 인물은 라훌 간디)부터 바뀌었다. 초대 발행인은 김동익이며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은 이상언이다. 편집장은 서정현이다.
품 명 뉴스플러스 창간호
시 대 1995.9.28
주 기
'우리나라 근대사.문학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급광(京畿 及光) 도기강좌(陶器講座) 여주고적 사진첩 (0) | 2019.05.22 |
---|---|
여성계(女性界) 1957 (0) | 2019.04.28 |
여상(女像) (0) | 2019.04.13 |
삼성 에니콜폴더 핸드폰 광고 포스터 6장 엘지 핸폰 포스터 4장등 (0) | 2019.04.11 |
리라국민학교 그림엽서 (0) | 2019.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