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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사.문학 .교육

하멜표류기(하멜 漂流記)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문고판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22. 1. 30.

품   명  하멜표류기(하멜 漂流記)  22.1.부.양 .구 15

크   기  10.5*15.5 이병도역주

시   대 1946 박문서관

주   기  하멜의 바이올린하고는 상관없다

제주도에 있는 하멜 기념비 환영하오 낮선이여

하멜은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1651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의 포수(砲手)로, 항해 도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하였다. 1668년 탈출하여 《하멜표류기(漂流記)》로 알려진 기행문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그의 억류생활 14년간의 기록으로서 한국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

말하자면 운 나쁘게 먼 나라에서 갖은 고생 다하다가 겨우 빠삐용처럼 탈출해서 자기 회사에 그동안 밀린 봉급 받을려고 13년 넘는 기간의 상황을 상세히 기술한 책. 사실 고생한 걸 티내려고 어느정도 과장을 했을 측면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묘사가 속속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 리얼리티를 보장한다.

한국의 생활상을 외국인의 시각에서 기술한 것 외에도 해외에 조선에 대한 정보를 처음으로 상세히 전파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인 자료 가치는 상당하다.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관한 서양인의 최초의 저술로서 당시 유럽인의 이목을 끌었다.1653년(효종 4)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페르베르(Sperwer)호[영어로는 스페로 호크(Sparrow Hawk)호]가 심한 풍랑으로 난파되어 선원 64명 중 36명이 중상을 입은 채 제주도의 대정현(大靜縣)차귀진(遮歸鎭) 아래 대야수(大也水) 연변에 상륙했다.
한국에 대한 이해가 그다지 깊지 않았던 서양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최초의 저서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책은 프랑스·영국·독일 등 서양의 많은 나라들이 다투어 번역, 간행했고, 우리나라에서도 1934년『진단학보』 1∼3호에 이병도(李丙燾)가 영역본(英譯本)·불역본(佛譯本)을 저본으로 번역, 전재했다.
그 뒤 『하멜표류기』가 일조각(一潮閣)에서 1954년에 간행되었고, 일본에서는 1961년이쿠타[生田滋]가 『조선유수기(朝鮮幽囚記)』라는 제목으로 번역, 간행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하멜표류기(─漂流記))]

 

 

품   명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22.1.부.양 .구 15

크   기  10.5*15.5 이병기역주

시   대 1946 박문서관이칭·별칭 : 인현왕후민씨덕행록 [민즁뎐덕행녹. 민즁전긔]

            창작발표연도 : 조선후기

            

[1]정의 :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전기체(傳記體) 소설.  

  인현왕후의 덕행을 작품 화한 이 소설은 파란만장한 사건이 흥미로워서일 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교훈서로도 널리 읽혀져 왔다. 국문학자료 및 당시의 궁중풍속과 생활의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2]개설 : 궁중문학류의 일종으로, 숙종 당시의 궁중을 배경으로 왕가 일문에서 인현왕후가 겪어야 했던 생애를 소설체로 엮은 작품이다. 작자는 인현왕후를 모시고 있던 궁인이라는 설이 있으나, 최근의 연구로는 왕후 폐출에 반대하였던 박태보(朴泰輔)의 후예나 왕후의 친정 가문에서 지은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필사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본·가람문고본 등 10여종이 있다.

「인현왕후민씨덕행록(仁顯王后閔氏德行錄)」·「민즁뎐덕 녹(閔中殿德行錄)」· 

「민즁전긔(閔中殿記)」 등의 이칭으로도 불린다.  

 이본간의 차이점은 분량과 내용에서 두드러진다

품   명  부인론 상하 2책 민중서관 문고판 

크   기 10*15 

주   기 김삼불 역주 민중서관 문고판

1946년 민중서관에서 발간한 『민중문고』는 『시조집』·『베벨부인론』 상·하권 등만을 내고 계속하지 못하였고, 1945년 정음사에서 발간한 『정음문고』는 듀이(Dewey,J.)의 『학교와 아동』을 비롯하여 『열하일기(熱河日記)』 등 25권 30책을 발행하였다.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1974년 다시 속간하여 1980년 12월까지 180종을 발간하였다.
을유문화사가 창설 2주년을 맞아 기획한 『을유문고』는 1948년부터 발행을 시작하여 정인보(鄭寅普)의 『양명학연론(陽明學演論)』 등 26종을 발간한 다음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1969년 다시 각 분야에 걸쳐 발간하여 1988년 269종을 간행한 후 절판하였으며, 2018년 현재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문고의 크기는 『정음문고』·『을유문고』 모두 6·25전쟁 전의 것이 A6판이었고, 후의 것이 약간 큰 가로 10㎝, 세로 17㎝의 직사각형으로 같은데, 『정음문고』는 가로짜기, 『을유문고』는 세로짜기로 되어 있는 점이 다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고(文庫))]

 

품   명  시경초(詩經抄)양주동

시   대  1948 을유문화사

주   기

1948년부터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문고본
1947년 회사 창립 두 돌을 맞아 발간에 착수, 이듬해 2월에 첫선을 보였다. 자체의 보편적 성격만이 아니라 올바른 민족문화 수립을 위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일반 대중들의 지적향상과 계몽을 위해 발행되었다. 그리고 1969년에 새로운 『을유문고』를 펴내면서 정치·법률·경제·철학·역사·예술·과학 등 각 영역을 총망라한 항구적 사업으로 지향하고자 함을 선언하였다.
초기 『을유문고』는 순백도림지(純白道林紙)를 사용하였고, 분량은 150쪽 안팎, 값은 200원 내외였다. 이후 1969년에 새롭게 발간된 『을유문고』는 6·25전쟁 전 문고본과 견주어보면, 가로의 길이는 10㎝로 같고, 세로의 길이가 14.7㎝에서 17㎝로 변형된 장체본(長體本)이다.
『을유문고』의 출간은 본래 일련번호순으로 기획되지 않았다. 매우 산발적으로 매달 또는 매주 나오기도 하였고, 독서계의 열망에 따라 중판 또는 증판되는 책도 있었다. 애초의 계획은 1947년 12월 1일 정인보 『양명학연록(陽明學演錄)』을 첫째 권으로 간행하려 하였으나, 원고 진행상 박태완 『성탄제』가 1948년에 첫 번째 권으로 출판되었다. 『을유문고』는 모두 35권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중에는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이병기選解)·『신앙과 인생』(김교신 유고)·『조선사교정(朝鮮史敎程)』(전석담)·『경제학입문』(고승제)·『시경초(詩經抄)』(양주동,역주) 등이 들어 있었다. 6·25전쟁 전까지 모두 52권이 문고로 기획되었으나, 26권은 내고 나머지 26권은 중도에 그만두었다.
1969년에 새롭게 펴낸 『을유문고』는 첫해에 무려 30권이나 집중적으로 발행하였다. 『한국의 문화』(문일평 저)를 제1권으로 한 『을유문고』는 1989년 2월까지 267권을 출간하였다. 『을유문고』의 발간자취는 다음과 같다. 1969년 30권, 1970년 20권, 1971년 30권, 1972년 20권, 1973년 30권, 1974년 30권, 1975년 30권, 1976년 30권, 1977년 10권, 1980년 6권, 1981년 4권, 1982년 5권이 발간되었고, 1983∼1988년에 22권이 나오는 등 총 268종이 발행되었다.
가장 많이 팔린 책 가운데에는 『명심보감신석(明心寶鑑新釋)』(이민수 역)·『논어』(차주환 역)·『혈(血)의 누(淚)(외)』(이인직 작)·『부생육기(浮生六記)』(심복 저, 지영재 역)·『노자도덕경』(남만성 역)·『인생론』(톨스토이 저, 김병철 역)·『타골시선』(유영 역)·『사회심리학』(사아젠트 저, 양회수 역)·『생활의 발견』(임어당 저, 김병철 역) 등이다.
1990년대부터는 을유문고 발행을 중단, 새로운 문고로 을유라이브러리를 기획, 1994년 제1권으로 김동인 『감자·배따라기』, 제2권 나도향 『물레방아』, 제3권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해 1999년까지 42권을 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