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명 어룡전 부용의 상사곡 금수강산
크 기
시 대 1914.1931 1928
주 기 신구서림
송나라 때 어처사는 부인 성씨와의 사이에 딸 월(月)과 아들 용(龍)을 두었다. 성씨가 세상을 떠나자 어처사는 강씨를 후실로 삼는다. 품성이 간악한 강씨는 재룡을 낳은 후 용과 월을 해치고자 음모를 꾸민다. 어처사가 이부상서가 되어 상경하자, 강씨는 두 남매를 내쫓는다.
남매는 온갖 고초를 겪으며 방황하다가, 용은 통천도사를 만나 도술과 무예를 배우게 되고, 월은 윤시랑의 양녀가 된다. 어상서는 벼슬을 사양하고 본가에 내려와, 남매가 쫓겨난 사실을 알고 그들을 찾아나선다.
월이 17세가 되니, 윤시랑은 그녀를 임상서의 아들 임선과 혼인시킨다. 임선은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를 제수받고, 어상서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한다. 이때, 북흉노가 중원을 침공하니, 용은 도사의 지시를 받고 용천검과 용인갑을 얻어 출전한다. 용이 적장을 베어 격퇴시키고 나아가 천자를 뵈니, 천자는 크게 기뻐하여 용을 좌승상으로 삼고, 임선을 우승상으로 삼는다.
몇 년 동안 남매를 찾아 다니던 어상서는 기이한 꿈을 꾸고 고향에 돌아와, 용의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용과 상봉한다. 어상서와 용은 월의 소식을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데, 우연히 부자의 대화를 듣게 된 임상서가 월의 소식을 전해준다. 그리하여 어상서는 그리던 남매를 다 찾게 된다. 계모는 앙화를 입어 죽고, 용은 이복동생 재룡을 찾아 형제의 의를 굳게 한다. 이후 용은 공주와 혼인하여 5남 1녀를 얻고, 집안이 모두 평안하고 화목한 가운데 부귀영화를 누린다.
국문 구활자본. 여주인공 부용(芙蓉)이 애인 김유성(金有聲)과 이별하면서 지은 「상사별곡(相思別曲)」이 그대로 작품명이 되었다.
1913년 신구서림(新舊書林)에서 간행한 활자본의 제목은 ‘부용의 상사곡’으로 되어 있다. 미모의 평양 기생과 서울 선비 김유성이 파란만장한 연애의 역정을 거쳐 혼인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애정소설이다.
평양부중의 시화금서(詩畫琴書)에 능통하고 뛰어나게 아름다운 기생 부용은 영문(營門) 이방(吏房) 추엽황의 딸로, 비록 기생의 몸이었지만 절개가 천고의 숙녀였다. 경성 안국동에 전 이조판서의 아들이고 문장과 음률에 능한 김유성은 편모 유씨를 모시고 있었다. 유성은 평소 부모의 명령이나 중매에 의한 혼인을 반대하였다.
승지(勝地)를 찾아 평양에 이르러서는 전 감사(監司 : 유성의 부친)의 이방이었던 김달중의 집에 유숙하면서 부용의 명성을 듣고 한수 구애(求愛)의 시로써 접근하여 시와 음률로 사귀었다. 인연을 맺은 지 10여일 후에 부용은 “인간리별 만
에
이후 부용은 두문불출하고 김유성은 평소 부용을 흠모하던 통인 최만흥의 시기로 주막에서 곤경을 당했다. 새로 부임한 호색(好色) 감사 이도중이 임지(臨地)에 도착하자, 최만흥이 기미를 알고 부용을 대동강 뱃놀이에 강제로 참여시켜 환심을 사려 했다. 그러나 부용은 이에 항거하여 강물에 몸을 던졌는데, 어부 최기남에 의해 구출되었다.
유성의 친구 이몽매가 평안도어사가 되어 이감사의 호색악정(好色惡政)을 탄핵 처벌하고, 부용은 유성을 사모하여 장단구(長短句) 「상사곡」 한편을 서울에 보냄으로써 유성은 죽은 줄 알았던 부용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유성은 과거에 급제하여 교리(校理)를 거쳐 임금의 특별한 명령으로 성천부사가 되어 부용과 더불어 부임하였다. 후에 우승지로 내직(內職)에 들자 부용의 권유에 따라 이판서의 딸을 정실로 맞고 함께 화락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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