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재박물관]
조선 중종 때 문신인 충재 권벌 선생의 많은 업적을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하기 위해 봉화땅 닭실마을에 발을 내렸다. 이곳 닭실마을에는 선생의 장자 청암 권동보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청암정과 석천정이 보존되어 있으며,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擇里誌)』에 "주위에는 울창한 송림과 아름다운 수석으로 싸여서 경관이 뛰어나게 수려하여 이 지역을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경승지"로 지적하고 있다.
[매.용족자]
충재박물관에는 선생이 남긴 많은 유물이 진열장에 정리 정돈되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충재 선생이 후진양성에 얼마나 많이 몰두할 수 있었던가를 알 수 있었다. 이 박물관에는 보물 제261호로 지정된 "충재일기"와 보물 제262호로 지정된 "근사록"등 많은 유물이 소장되어 있어 더욱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하였다.
[전시유물]
청암 권동보가 부친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청암정으로 향했다. 넓은 공간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 곳에서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한 청암정은 새로운 우주공간을 연상케 하는 곳이라 하겠다. 장석교를 건너보면 청암정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거니와 청암정의 마루에 앉아 또 다른 세계를 바라보면 새로운 이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청암정과 장석교]
문지방을 넘은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를, 그러나 나에게는 많은 의문점이 따르기 시작하였다. 앉아도 보았고 발끔치를 들고 문지방 넘어 있는 세상을 보았건만 보이는 것은 빙둘러 심어진 나무 외는 보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 올라서서 담 넘어 세상을 상상하면서 탄성의 소리를 낼 것이지만 나는 그런 탄성을 지금은 낼 수 없었다. 정자라면 사방이 훤히 내다 볼 수 있는 곳이 정자인데, 이곳의 정자 주위에는 높게 자란 나무가 새로운 세상을 막고 있었다.
[나무에 가려진 시야]
문을 열고 밖을 보아도 그 넘어 세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정자가 처음 세워졌을 때는 아마 이렇게 높은 나무가 없었을 것이다. 작은 호수 넘어 펼쳐진 들판과 병풍처럼 둘러진 절벽을 보면서 수 많은 싯귀가 한지 위에 검은 글씨가 쓰 내려갔을 것이다.
모두 작은 협문을 통해 청암정의 세계에서 벗어났고 나 홀로 다시 한번 청암정에 올라서서 주위를 보았건만 밖의 세상을 볼 수 없어 장석교 위에 서서 다시 한번 청암정을 보고는 협문으로 나가려는 그 순간 뒤에서 "여보게 젊은이 그냥 가겠는가 간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와 함께 잠시 말동무 해줄 수 없겠는가" 하면서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바로 조선의 선비였다. 선비는 나를 보고 어디서 온 객인지 물었다. 나는 한양땅 염창나루 옆 소금창고가 있는 증미고을에서 왔다고 하니 "그 멀리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다"고 하면서 "청암정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 함께 이야기 해 보세나' 하기에 나는 '선비께서 토석담으로 둘러친 세계에서 작은 협문을 나서면 또 다른 세계가 앞에 나타나는데 처음부터 그런 세계을 나누지 말고 이곳 청암정까지를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면 넓은 세계가 선비의 것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이미 나누어진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를 가려고 하니 앞에 와 닿은 곳에 물의 세계로 접어 들게 됩니다. 물의 세계를 넘어 선비가 목표한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면 이곳 세계와 저곳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놓여 있어야 겠지요." 여기에 놓여진 장석교를 건너 보기로 하고 함께 건넜다. 이제 선비의 최종 목적지인 세계에 도착하여 마음의 안식처인 청암정에 올라섰다.
[나무에 막혀버린 창넘어 세계]
동으로 둘러보니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자란 나무가 막고 있고, 남으로 바라보니 별체가 가로막고, 서쪽으로 바라보니 언제 자랐는지 우뚝 솟은 고목이 가로막고, 북쪽을 바라보니 봄부터 지금까지 잎을 내어 세상을 막고 있는 이름 모른 나무가 청암정을 감싸고 있었다. 선비에게 이런 모습의 청암정을 이야기 했더니 웃으면서 ,젊은이 잘 보았네. 나도 청암정에 앉아 저 넘어 세상의 변화를 볼 수 없어 480년 만에 젊은이와 함께 온 것이네 이제 젊은이의 뜻을 알았으니 나는 이제 왔던 길을 가야하니 젊은이의 좋은 시간이 되게나"하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협문]
장석교를 건너 협문 밖 길 가운데에 서서 옛날에는 이 길에는 마차가 다녔을 것이고 청암정에서 내려다 보는 세상이 넓은 들판이었을 것이다. 넓은 세상인 들판의 인삼밭 밭두렁 길로 걷다 뒤돌아 보니 청암정은 나무에 가려져 그 형체를 알 수 없었다.
[닭실마을]
인삼밭의 밭뚝에는 가을을 말해주는 메뚜기는 앞뒤로 가리지 않고 놀라서 뛰고 있었다. 인삼밭을 지나 황금빛으로 탈색되는 벼이삭의 고개숙인 모습이 추수를 알리는 듯 하였다. 들판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다시 선비가 나타나 "젊은이 이곳 봉화땅에는 송이버섯이 많이 생산되고 품질도 좋으니 봉화읍내 포도청 옆에 버섯요리 잘 하는 주막이 있으니 그곳에서 신세지고 가게나" 라는 말을 남기고 또 사라져 버렸다.
[송이버섯전골]
우리 일행은 봉화읍 경찰서 옆 종로식당에서 조선의 선비가 말해준 송이버섯전골을 시켰다. 들어오는 순서대로 자리에 앉고, 한 상에 전골 하나씩 주문되어 부르스타에서 보글바글 끓기 시작하였다. 반찬은 굴무침, 도라지무침 등등 맛있게 요리되어 나왔는데 버섯전골이 익기도 전에 반찬은 몽땅 없어지고 또 다시 주모! 여기 굴도 더 주시고 도라지도 더 달라는 소리가 빗발치고 있었다. 버섯전골은 아우성 소리에도 계속 끓고 있었다. 정말 맛있게 익어가는 보글보글 소리가 10리 밖에도 들리고 냄새가 퍼져갔다. 성질급한 사람은 국물이라도 맛을 보기 위에 숫가락이 들어갔다 나왔다 몇 차례하더니만 다 익지도 않았는데 배당된 접시에 국물을 조근 떠 가더니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옆 선비님도 나도 먹어야 되겠다 하고는 국자가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한팀 4명이 모두 국자를 운전하기 시작하드니 금새 전골 냄비는 텅 비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소금을 조금 넣으면 맛이 더 좋다고 하니 팀에서 소금을 찾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듯 하였다. 한쪽에서는 좋은 안주에 수질검사도 함께 해야 한다고 하니 금새 참소주 한병이 어느 상에 떡 놓이더니 너도 한잔 나도 한잔 하니 그 많은 사람 중에 유독 이 점잖은 선비만 수질검사를 하지 못하고 그냥 통과되고 말았다. 버섯전골 국물이 좋았던지 아끼고 아껴 먹더니만 금새 밥 한 그릇 뚝딱하고 주모! 여기 밥 한 그릇 더 달라고 소리 지르니 그 소리가 경찰서 죄짓고 한참 조사 받는 죄인 귀 까지 울렸으니 조사 받는 죄인이 가만히 있겠는가. 달려왔건만 국물도 없는데, 국물 한방울에 얻어터지고 다시 조사 받으로 갔고,.... 한참 먹고 있는데 옆집 선비는 다른집 선비가 먹던 말던 얼굴을 푹 숙이고 먹는데 그릇 바닥까지 박박 긋는 소리에 음식점 주모가 와서는 봉화송이버섯전골에는 누릉지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니 금새 얼굴이 마치 숯불이 피어 오른 듯 하였다.
[잠시 식사 점호가 있겠습니다.]
모두 배가 부르니 한 사람씩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늦게 나오시는 선비께서 밥상 끝에서부터 하나하나 점호를 취하는데, 이 선비는 이 좋은 송이버섯 한 조각을 깜박 잊고 먹지 못하고 그냥 나갔고, 이 선비님은 아까운 국물만 남기고 나가 버렸고, 이 선비님은 수질 검사하라고 따라 주었던 꿀맛나는 수(酒)가 반 잔이나 남겼고, 옆자리 선비님은 송이 한 조각을 수질검사 잔에 잠수시켰고, 앞자리 마님은 도라지 양념장을 그릇의 얼굴에 화장을 시켰고 옆자리 마님은 언제 커피를 마셨는지 혼자만 마셨고, 건너편 마님은 수질검사도 할 줄 모르면서 수질 원료통이 앞에 있었고, 맞은편에 앉았던 선비님 앞에는 물수건이 휴지와 함께 나란히 놓고 갔으니 마지막 나오신 선비님이 얼마나 속이 아팠을까. 이 선비님은 천천히 걸어 나오면서 21명이 먹었던 송이버섯전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마(瀚輦) 안에서나 가마 밖에서나 항상 봉화송이버섯전골 생각을 못 잊어 또 다시 안동의 산수가 깊고 깊은 한 대감집에서 하룻밤 묵객으로 신세 지기로 하고, 향음이 가득 담긴 수질검사를 다시 시작하였다는 전설이 있었답니다. 다음날 아침에 충청도 고을에서 오신 홍선비님께서 가죽신과 고무신을 각각 한 짝씩 신고 잃어버린 가죽신 한 짝을 찾기 위해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는 사이에 "조반(朝飯)드시오!" 하는 이 대감댁 마님의 소리에 번쩍 귀가 열리고....지난밤의 작은 토론을 또 다시 문제 삼더니만 가마에 다시 오르고....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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