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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古文書)

김창집 선생 서간문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08. 1. 11.
김창집 [, 1648~1722]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기사환국 때 부친이 사사되자 은거하였다. 후에 영의정까지 올랐으나, 경종 때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하다가 소론파의 반대로 대리청정이 취소되자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어 신임사화가 일어나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본관 안동
몽와
별칭 자 여성, 시호 충헌
주요저서 《국조자경편》 《오륜전비언해》《몽와집》
본문

본관 안동. 자 여성(). 호 몽와(). 시호 충헌(). 영의정 수항()의 아들. 1672년(현종 13) 진사가 되고, 1681년(숙종 7) 내시교관()을 지낸 뒤 1684년 공조좌랑()으로 있을 때 정시문과에 급제, 정언() ·병조참의를 지냈다. 1689년 기사환국() 때, 부친이 관련되어 사사()되자 산중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아버지 수항 형제의 관직이 복구되고, 그를 병조참의() 등에 임명하였으나 거듭 사양하였다. 뒤에 철원부사로 치적을 올리고 강화부유수 ·예조참판 ·개성부유수 등을 역임한 뒤 호조 ·이조 ·형조의 판서를 두루 거쳐 1705년 돈령부지사()가 되었다가 다음해 한성부판윤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다. 1712년 사은사(使)로 청나라에 갔다왔으며, 1717년 영의정에 올랐다. 숙종 말년에 왕이 병석에 눕자 세자의 대리청정()을 노론()으로 주장하다가 소론()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숙종이 죽은 뒤 왕위에 오른 경종()은 몸이 병약하고 후사()가 없었으므로, 노론파의 대신들과 의논하여 왕세제(: )의 책봉을 상소하여 실행하게 하였다. 그러나 1721년(경종 1) 다시 왕세제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으나 경종의 친정()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소론파의 조태억() ·이광좌() 등에 의하여 대리청정이 취소되자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어 신임사화()가 일어나자 거제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음해 사사()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관직이 복구되고 영조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과천의 사충서원(), 거제의 반곡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국조자경편()》 《오륜전비언해()》 등이 있고, 문집에 《몽와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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