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2.02 23:59 / 수정 : 2007.12.03 10:28
-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보다 150년 뒤에 만들어진 조선 수군의 전함은 비둘기처럼 생겼다?
조선 후기의 전함이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해골선의 모습을 그린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해踪?繭?바다(海)의 비둘기 또는 '송골매'란 뜻이다. 고창석 전 한국고서협회 회장은 최근 발간한 ‘조선 수군과 해양유물 도록’(장보고 刊)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해골선도’를 공개했다.
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도면은 ‘해골선’이라는 제목 아래, 배 앞부분이 새의 머리처럼 돼 있고 새의 깃털이 배 위를 뒤덮은 형상의 전함을 그렸다. 그 밑에 “본판(本板·바닥)의 길이는 7파(把·1파는 10척) 5척, 윗부분의 길이는 9파 3척, 너비는 2파 5척, 높이는 2파 1척이다. 정묘년(1747년으로 추정) 3월 ○일에 쇠못을 박아 새로 만들었고 가격은 쌀 80석(石) 6두(斗) 5합(合)”이라고 적었으며 전라우도의 관인이 찍혀 있다.
- 1747년 3월 전라우수영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에 수록된 조선 수군의 전함 해골선의 그림. /고창석씨 제공
‘조선왕조실록’ 영조 16년(1740년) 윤6월 18일조에는 “전라좌수사 전운상(田雲祥)이 해골선을 만들었는데, 몸체는 작지만 가볍고 빨라서 바람을 두려워할 걱정이 없었다” “(임금은) 통영과 여러 도(道)의 수영(水營)에 해골선을 만들라고 명했다”고 기록돼 있다. 정조 때 나온 ‘전라우수영지’에 의하면 이 배에는 모두 56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학계에선 임진왜란 때의 판옥선보다 선체가 작으면서도 운용하기 편리한 중소형 군선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이 배의 모습을 그린 당시의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100여 년이 지난 1855년에 편찬된 ‘무비요람(武備要覽)’에 중국의 ‘무비지(武備志)’를 보고 그린 것으로 보이는 해골선 그림이 있지만 이번 자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정진술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기획실장은 “문서의 출처와 시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선 후기의 주요 함선이었던 해골선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고 말했다. ‘조선 수군과 해양유물 도록’은 이 밖에 고창석씨가 소장한 ‘충무공 장계’ ‘조선사공명부’ ‘해동제국기’ 등의 자료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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