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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민속품이야기

김병조[金秉祚]一齋先生遺墨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08. 2. 6.

 

書味淸於水養魚道心靜似山藏玉   

 

글을 쓰는 맛은물속에 고기를 기르는 것보다 맑고

도를 닦는 마음은 산 속에 감춰진 옥화 같이 고요하고다

 

 

1876(고종 13)~1947. 김병조

독립운동가·목사.

김병조
호는 일재(一齋). 1915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되어 목회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19년 2월 4일부터 선천에서 열린 평북장로회의 사경회(査經會)에서 이승훈·이명룡·유여대·백시찬·양전백·홍성익 등과 3·1운동에 관한 계획을 논의하고, 민족대표 33명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명이 모인 서울 태화관 집회에 참가하지 않고, 선천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만세시위를 직접 주도하였다. 그뒤 중국에 망명하여 국민대표회의 준비위원, 상해임시정부 상임이사, 임시의정원 평안도대표, 사료편찬위원, 상해거류민단의사회 회원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1920년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에 한국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뒤 만주로 가서 학교를 세워 교육사업·계몽운동에 주력하여, 〈한족신문 韓族新聞〉을 발행하여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해방 후에는 조만식과 더불어 조선민주당을 창설하고, 반공운동에 투신하였다. 1946년 반공의거(反共義擧)를 위한 비밀결사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여 지하운동을 벌이다가 소련군정에 체포되었다. 1947년 평양감옥에 복역중 시베리아에 유형당하여 죽었다. 저서로는 임시정부활동시기에 간행된 〈한국독립운동사략 韓國獨立運動史略〉 상편 및 1924년 만주 지안 현[輯安縣]에서 간행된 〈대동역사 大東歷史〉·〈독립혈사 獨立血史〉 등이 있다
음성기록역사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