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에 담긴 우리 건축’, 세 번 놀랐어요” | ||||||||||||||
[인터뷰] 수원화성박물관 오선화 학예연구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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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그린 꿈, 역사로 이어지고 ‘도면에 담긴 우리 건축’ 특별기획전이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지난 10월 6일부터 올해 연말까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古)건축도면’ 전시회인 만큼 기획전 앞에 ‘특별’이라는 말을 붙여도 조금도 어색함이 없다. 우리나라 고건축도면은 옛날에는 대목수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도면에 관한 자료가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공사가 끝난 뒤 보고용으로 만들어진 형태였다. 이 때문에 근대적 도면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그려졌다. 이 땅에 세워진 고건축물을 우리 손으로 직접 실측, 해체, 보수, 복원한 지 이제 겨우 50년이다. 게다가 캐드를 이용해 건축도면을 제작하고부터는 오히려 종이에 그려진 건축도면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건축도면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수원 화성의 경우는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재건할 수 있었다. 장안문은 건축도면이 없으니 건축기법이 거의 같은 팔달문을 실측해 복원한 경우다.
그렇다면, ‘도면이 없는(?) 우리 건축’은 어떻게 ‘도면에 담긴 우리 건축’ 특별기획전으로 탄생할 수 있었을까. 이번 특별기획전에서 전시기획을 맡은 오선화(38) 수원화성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준비과정에서 세 번이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최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만난 오 학예연구사가 이번 특별기획전이 담긴 전시도록을 펼쳐보였다. -(전시도록을 보며) 참 대단하네요. “저희가 매번 전시를 할 때마다 새로운 분야다보니 그 분야에 대해 처음부터 공부를 해요. 저도 도면에 대한 문외한이긴 마찬가지였어요. 이건 50년대 전쟁으로 화성이 무너진 이후 재건하는 모습이에요.” -사료가 많이 남아 있어 건축도면 보고 한 거죠. “화성 같은 경우는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재건 할 수 있었어요. 장안문과 팔달문은 건축기법이 거의 같아요. 팔달문은 남아 있고 장안문 없으니 팔달문을 보고 실측해 장안문을 복원한 거죠. 건축도면이 잘 남아있지 않아요. 저희도 어렴풋이 도면이라는 게 어딘가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남아 있지도 않고 절하되고 있는 실정이더라구요.” -문양까지 다 세세하군요. “이런 사진은 1922년 화홍문이 홍수로 다 사라진 모습이에요.” -농사도 지었군요. “네. 당시엔 화홍문 앞에서 빨래도 하고 널어 두고. 여기 서 있는 사람이 조사자인데 건축물을 실측하기 위해 서 있는 거죠.” 오 학예연구사는 안동대 민속학과를 나왔다. 지난 2008년 개관 때부터 기획전, 학술대회 등을 맡아 일을 했다. 남편도 경북 ‘문경 옛길 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연구사이다. 아들만 둘이다. 집안 내력에서 조금 특별한 점은 시아주버니가 시(詩) ‘연탄재’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이라는 것. -이번 ‘특별기획전’의 의미가 말 그대로 ‘특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시회는 그 해 준비해서는 제대로 된 전시가 나오기 어렵죠. 1~2년 전에 구상하고 자료를 준비해야 전시가 잘 나와요. 2년 정도 준비했어요.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이 화성에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어떤 의미로는 건축도면집이죠. 내도, 외도부터 해서 투시도 개념도 있고. 그런 걸 가지고 있는 화성에 새로운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건축도면에 대한 전시는 없었죠. “그동안은 정조대왕에 대한 전시가 많았죠. 상반기도 정조의 어린 시절을 전시했거든요. 그런데 정조 그리고 당대 18세기 문화 전시는 우리 박물관만 하는 게 아니에요. 장서각에도 많은 유물이 있고 규장각도 마찬가지.” -수원화성박물관만의 뭔가가 필요했던 거군요. “우리만의 성격만 가지고 있기에는 후발 주자로서는 다른 것이 필요했던 거죠. 저희는 개관한 지 2년 밖에 안 된 신생박물관이에요. 소장한 유물이 많지 않죠.” -그럼 전시 유물은 어떻게 확보하나요. “대여하죠. 가지고 있는 것이 2정도라고 하면 8을 대여해요. 대여해 온다는 것이 어려움도 크죠. 특성상 A급은 빌리기 어려워요. 우리 박물관의 향후 지향점을 찾는다고 하면 다른 박물관하고 똑같이 가서는 어렵죠. 정조대왕이 아니면 화성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화성의 일반적 성곽 특징을 가지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화성 자체가 조선시대 대표 성곽의 꽃이라고 하니까 ‘건축’에 초점을 맞춰보자고 한 거죠. ‘화성성역의궤’도 건축도면집이라 할 수 있는 거고요.” 우리나라에서 최초인 건축도면 전시회. 건축도면이 역사적 유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적도 없다. 특별기획전을 준비하는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양대 한동수 건축학부 교수의 조언을 받아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유물 구입 공고를 내면서 구입 대상 목록에 ‘건축도면’을 포함시켰다. -유물이 좀 들어왔나요. “첫 해는 들어온 것이 없었어요. 나중에 공고를 본 사람들이 ‘우리한테 건축도면이 있다’고 했는데, 2010년에는 유물을 사지는 못하고 소문만 냈어요. 하반기부터 건축도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죠. 그러다 일제 때 화성을 수리한 건축도면을 발견했어요.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오 학예연구사는 처음으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1922년에 홍수가 나고 23년에 수리하기 위한 설계도가 남아있더라고요. 일제 때 화홍문하고 팔달문을 수리한 건축도면이 있었어요. 현재 전시되어 있어요.” -처음 시작은 그 2장이었군요. “그 분이 가지고 있는 건축도면집이 두꺼운 거예요. 근데 2장 밖에 안 보여주고. 그래서 일괄 구입을 접촉해 설득을 했죠. 빨리 선점을 하기 위해 올해 1월에 곧바로 유물 구입공고를 올리고 유물을 가져와서 봤어요. 그 때 진짜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그는 두 번째로 “진짜” 놀랐다. “불국사, 광화문, 경복궁 등 우리나라 대표적 고건축도면들에 대한 일제 때 수리도면이 잔뜩 있는 거예요. 98점을 일괄해서 샀죠.” -굉장했겠습니다. “그리고, 가치가 있는 게 ‘원도’라는 거예요. 첫 번째로 그린. 국가기록원에도 일제 때 이런 자료가 있는데, 원도도 있지만 청사진으로 남아 있죠. 원도를 확보한 거예요.” 고건축도면은 새로 건물을 짓기 위해서도 그리지만 보통은 수리하거나 복원하기 위해 그린 도면이다. 당연히 고건축물 수리나 복원공사를 담당한 건축사무소에 고건축도면이 남아있을 공산이 컸다. 마침 해방 후 우리나라 대표적 고건축물 수리나 복원을 ‘삼성건축사사무소’에서 담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1975년부터 화성 전체를 수리·복원 하잖아요. 그 때 삼성건축이 그 공사를 맡았어요. 삼성건축에 그 자료가 다 남아 있는 거예요. 감격스러울 수밖에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건축도면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국가기록원이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대여 불가’였다. 수원화성박물관으로서는 ‘그림의 떡’이었다. 특별기획전을 코 앞에 둔 오선화 학예연구사는 “확 좌절했다.” “그러다 삼성건축에 가보니 쌓여 있는 거예요. 그것도 화성 전체 수리·복원 건축도면이 남아 있는 거예요.” 이 대목에서 오 학예연구사는 세 번째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번엔 새로운 고건축도면을 무더기로 발견해서가 아니었다. “삼성건축은 1954년에 설립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설계사무소 거든요. 비가 새고 있는 거예요. 낡은 설계사무소 한쪽 창고에 건축도면이 꽉 찼는데 비가 새고 있는 거죠. 너무 안타까웠어요. 조금 있으면 다 없어지겠구나. 보관상태가 열악했어요.” 한 여름 내내 그는 삼성건축 창고에 쌓인 건축도면 더미에 파묻혀 보내야 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화성에 대한 고건축도면을 골라냈다. 1,000장 가까운 화성 전체 수리·복원 도면이 나왔다. -이제는 전시하는 게 고민이 됐겠군요. “다 전시를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많다보니. 장안문, 팔달문, 화홍문, 방화수류정, 동북공심돈, 이렇게 5개로 간추렸어요. 누구를 위한 전시회인가도 고민이었죠. 박물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일반인이잖아요. 건축도면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기 위한 시나리오 작업이 필요했죠.” 건축도면의 가치를 일반인에게 알기 쉽게 전시하는 것, 최초의 고건축도면 전시인만큼 역사적 흐름을 짚어주는 것, 화성을 어떤 식으로 설계하고 복원했나 알려주는 것 등이 전시 테마로 잡혔다. 특별기획전을 몇 달 앞두고 야근을 밥 듯 했다. -마지막으로 특별기획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보람이 있다면. “한 번도 정리되지 않은 것을 정리해 냈어요. 고건축도면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겁니다. 수원화성박물관이 건축도면의 아카이브로 나아갈 방향을 정했다는 거죠.” 이번 특별기획전을 준비하고 전시하는 동안 오선화 학예연구사의 머리에는 어느덧 흰서리가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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