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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장 이야기한줄 수졸재 (守拙齋)

[스크랩] 하늘에서 보낸 편지 기초수급자 할머니 “이웃 위해 써주오”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07. 7. 13.

한겨레]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100장과 낡은 우표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2동사무소에 한 중년의 사내가 찾아왔다. 사내는 어머니 사망 신고를 하러 왔다며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어머니가 꼭 전하라고 했습니다.”

봉투 겉에는 “00아,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거든 보지 말고 전해라. 울지 마라.”라고 적혀 있었다. 봉투 안에는 다시 하얀 편지 봉투가 들어 있었고 그 안에는 1만원권으로 현금 100만원과 편지 두 장이 있었다. 오랫동안 모은 듯한 수십장의 우표가 든 스크랩 책자도 따로 들어 있었다.

편지 두 장은 “위 돈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한강로 사회복지사에게 맡깁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사회복지사 아가씨 고마워, 잊지 않을게. 이건 내 마지막 선물이야. 다음 생애에 만나면 보답할게.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라는 ‘마지막 인사’가 적혀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처음에는 할머니의 유산을 받지 않으려 했지만, 울듯한 표정의 사내가 “어머니 뜻이니 부디 그냥 받아달라”고 사정해 거절하지 못했다.

현금 100만원과 편지의 주인공은 지난 7월28일 숨진 이영순(75) 할머니. 할머니는 국민생활기초수급자로 어렵게 살아와, 100만원은 사실상 평생 모은 돈이나 다름없다. 강영미 한강로2동사무소 사회복지사는 “할머니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한달 4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방세 내고 약값 쓰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을텐데, 돈을 모았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보증금 300만원 월세 15만원짜리 다세대주택 단칸방에 혼자 살았다. 사람 둘이 누우면 더이상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좁은 곳이었다. 전화도 없었다. 동사무소에서 직접 찾아가야만 할머니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외롭게 살던 할머니는 그때마다 찾아온 동사무소 직원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가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들과 딸이 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선 둘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할머니가 아예 움직이지 못하자 아들이 나타나 옆을 지켰다. 동사무소에 나타나 할머니의 유언을 전했던 아들도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여서, 그의 형편이 어려웠음을 짐작하게 했다. 강 사회복지사는 “아들과 딸 모두 사정이 매우 어렵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전했다.

할머니 건강은 더욱 안 좋아졌다. 2002년부터는 당뇨 합병증으로 눈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6개월 전부터는 호홉곤란이 겹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되자, 할머니는 마지막 가는 길을 혼자서 준비하게 된 것 같았다.

“우표 가운데는 소인이 1963년 것도 있었습니다. 돈이나 우표나 할머니께서 평생 모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가난했지만,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남긴 소중한 유산 100만원은 그의 뜻대로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회복지시설에 기탁될 예정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출처 : 쌍코 카페
글쓴이 : Η멀더요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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