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영주로 가는길에 서후면 봉정사로 진입하면 오른쪽 작은 언덕위에 쌍계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2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리 이름이 나지는 않았지만 서재라는 분위기가 잘나는 곳이다.
안동부사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의 필체가 아주 깔끔한 인상을 준다.
입구에는 "2003년 입춘절에 향토사적 쌍계서재 중수기를 쓰며 한양조씨 태연공파의 개화의 산실이요 역사의 요람이다. 이의근 도백과 윤상주 의원의 지역문화 창달과 유적 보전을 위하여 아낌없는 지원으로 중수 기념비를 세운다....." 는 뭐 그런 내용의 기념비가 서있다.
돌아 나와서 영주쪽으로 5분 거리의 급 커브길에 도계서원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는데 이길이 워낙 급회전을 하는곳이라 길가의 이정표를 읽을 여유조차 없을 지경이다. 영주 안동간 새로운 국도가 내년에 개통 예정으로 공사가 한창인데 그때 까지는 안동쪽에서 진입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곳이다.
도계서원(道溪書院)은 옥봉 권위(玉峰 權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방 유림의 고의로 도계정사에 선생의 위폐를 봉안하여 제향 하였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되었으나 1928년 옥봉 선생이 거처하던 만대헌 옛터에 서원으로 승격하여 복설하였다.
이고을의 아름다움을 명륜당 상량문은
"동쪽으로는 청량산 육육봉이 구름밖에 솟아있고
산아래 도산에는 퇴계선생 사당이 있어
마음의 향불을 피워 남몰래 상통했네
서쪽으로 학가, 천등 두봉우리가 나란히 보이니
도덕본체의 유래함이 한량 없으니
그누가 거슬러 오묘함을 알아내랴.
남쪽으로 낙동강물 깊고 깊어 삼십리에 뻗혀있네.
이 학문 발상근원 두터움을 알았으니
천년동안 청아하게 내려왔네.
북쪽으로 조령, 죽령 두길목이 삼각산과 통하였네.
푸른 봉황 날아가고 고운 구름 깊었으니
만고의 한가함을 세상 사람 모르더라"
적고 있다.
옥봉 선생은 고려조 예의판서 인의 후손이요 생원 심행의 아들이다. 김성일, 유일재, 김언기, 조목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약관의 나이에 동당시 별시에 합격 하였으며 선조 34년(1601)에 문과에 급제 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뒤에 현조, 예조정랑에 임명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동경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문집 2책이 전해지고 있다.
"말세라 학문 나뉘어져 형세가 시끄러우니
선유들의 깊은 요지 그 누가 찾으련가
오로지 사물따라 궁리함을 위함이라
헛된것을 향하여 마음허비 말지어다.
도리는 내게 있고 딴데 있지 아니하며
성공은 실천에 달렸으니 어찌 깊은데 연유하랴
예부터 전한 모두가 스승의 법도이라
성인들의 상전한 것은 단 한가지 공경일세"
세속의 명리를 경계하고 도의 생활을 실천하고자 하는 선생의 강한 의지가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만대헌은 옥봉이 36세 되던해(1587)에 수학과 강학을 위해 건립한 가옥이다. 경북 유형문화재 제26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만대헌이란 편액은 명필인 아우 연어정 권오의 필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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