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동농(東農). 예조판서 응균(應均)의 아들이다.
1877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그뒤 규장각참서관(奎章閣參書官)이 되었다.
1880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1881년 장례원주부(掌禮院主簿)가 되었다.
그뒤 인천항 통상사무아문주사(通商事務衙門主事)·부수찬(副修撰)·주차일본공사관참찬관(駐箚日本公使館參贊官)과 장령(掌令)·사복시정(司僕寺正)·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1887년부터 주일본판사대신(駐日本辦事大臣)으로 4년간 동경(東京)에 주재하였으며, 1891년부터 안동대도호부부사를 지냈다.
1894년에는 군국기무처회의원(軍國機務處會議員)이 되어 내정개혁에 참여하였으며, 병조참의·외무독판서리(外務督辦署理)·전우국총판(電郵局總辦)·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95년 농상공부대신, 1896년 중추원일등의관을 지냈다. 갑오경장이 실패한 뒤에는 1896년 7월에 조직된 독립협회의 위원에 선임되었고, 1897년에는 신구법(新舊法)을 절충하기 위하여 설치한 교전소(校典所)의 지사원(知事員)과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77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그뒤 규장각참서관(奎章閣參書官)이 되었다.
1880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1881년 장례원주부(掌禮院主簿)가 되었다.
그뒤 인천항 통상사무아문주사(通商事務衙門主事)·부수찬(副修撰)·주차일본공사관참찬관(駐箚日本公使館參贊官)과 장령(掌令)·사복시정(司僕寺正)·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1887년부터 주일본판사대신(駐日本辦事大臣)으로 4년간 동경(東京)에 주재하였으며, 1891년부터 안동대도호부부사를 지냈다.
1894년에는 군국기무처회의원(軍國機務處會議員)이 되어 내정개혁에 참여하였으며, 병조참의·외무독판서리(外務督辦署理)·전우국총판(電郵局總辦)·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95년 농상공부대신, 1896년 중추원일등의관을 지냈다. 갑오경장이 실패한 뒤에는 1896년 7월에 조직된 독립협회의 위원에 선임되었고, 1897년에는 신구법(新舊法)을 절충하기 위하여 설치한 교전소(校典所)의 지사원(知事員)과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