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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예절문화

동몽선습

by 골동품 고서 고문서 근대사 갤러리 진품명품 2007. 10. 31.
1) 동몽선습(童蒙先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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童蒙先習(동몽선습)은 조선 중종 때 학자 박세무(朴世茂)가 저술하여 1670년(현종 11)에 간행하였다. ≪千字文≫을 익히고 난 후의 학동(學童)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먼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五倫)을 설명하였다.

이어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부터 명나라까지의 역대사실(歷代史實)과 韓國의 단군(檀君)에서부터 朝鮮時代까지의 역사를 약술(略述)하였다.

이 책의 중요성을 깨달은 英祖大王은 교서관(校書館)으로 하여금 발간하여 널리 보급하도록 하였다. 1541년(중종 36)에 쓴 저자의 친필사본(親筆寫本)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소장되어 있고, 초간본(初刊本)은 전하지 않는다.

1759년(영조 35)의 重刊本만 전하며, 1742년 英祖가 쓴 序(서)와 1770년에 송시열(宋時烈)이 쓴 跋(발)이 있다.



                                + 순 서

       

1. 序文(서문) - 始(시)         2. 父子有親(부자유친)

3. 君臣有義(군신유의)          4. 夫婦有別(부부유별)

5. 長幼有序(장유유서)          6. 朋友有信(붕우유신)

7. 總論(총론,  1)              8. 總論(총론,  2)

9. 總論(총론,  3)             10. 總論(총론,  4)

11. 總論(총론,  5)             

12. 어제동몽선습서(御製童蒙先習序)

13. 跋文(발문) - 終(종)

   

1. 서문(序文) - 始(시)

* 天地之間 萬物之衆(천지지간 만물지중)에 惟人(유인)이 最貴(최귀)하니 所貴乎人者(소귀호인자)는 以其有五倫也(이기유오륜야)니라

  (解釋)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의 무리 가운데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五倫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是故(시고)로 孟子曰(맹자왈) 父子有親(부자유친)하며 

君臣有義(군신유의)하며 夫婦有別(부부유별)하며 長幼有序(장유유서)하며 朋友有信(붕우유신)이라하시니 人而不知有五常(인이부지유오상)이면 則其違禽獸(즉기위금수)와 不遠矣(불원의)리라

  (解釋) 이 때문에 孟子께서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親愛함이 있어야 하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義理가 있어야 하며, 부부 사이에는 區別이 있어야 하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친구 사이에는 信義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면서 五常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짐승과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 然則 父慈子孝(연즉 부자자효)하며 君義臣忠(군의신충)하며 夫和婦順(부화부순)하며 兄友弟恭(형우제공)하며 朋友輔仁 然後(붕우보인 연후)에야 方可謂之人矣(방가위지의)리라

  (解釋)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며, 임금은 신하에게 의리를 지키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하며, 남편은 가족을 화합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친구 사이에는 仁을 도와준 뒤에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부자유친(父子有親)

* 父子(부자)는 天性之親(천성지친)이라 生而育之(생이육지)하고 愛而敎之(애이교지)하며 奉而承之(봉이승지)하고 孝而養之(효이양지)하나니 是故(시고)로 敎之以義方(교지이의방)하여 弗納於邪(불납어사)하며 柔聲以諫(유성이간)하여 不使得罪於鄕黨州閭(불사득죄어향당주려)하나니

  (解釋)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정해준 친한 관계이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사랑하고 가르쳐야 하며, <자식은> 부모를 받들어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고, 효도하면서 봉양해야 한다. 이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올바른 도리로 가르쳐서, 부정한 곳에 발을 들여 놓지 않게 해야 하며, <자식은> 부모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려서 고을에서 죄를 얻지 않게 해야 한다.


* 苟或父而不子其子(구혹부이부자기자)하며 子而不父其父(자이부부기부)하면 其何以立於世乎(기하이립어세호)리오 雖然(수연)이나 天下(천하)에 無不是底父母(무불시저부모)라 父雖不慈(부수부자)나 子不可以不孝(자불가이불효)니라

  (解釋) 만약 혹시라도 부모이면서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식이면서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세상에서 자립할 수 있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천하에는, 善하지 않은 부모가 없는지라, 부모가 비록 자식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 昔者(석자)에 大舜(대순)이 父頑母?(부완모은)하여 嘗欲殺舜(상욕살순)이어늘(순)이 克諧以孝(극해이효)하사 烝烝乂(증증예)하여 不格姦(부격간)하시니 孝子之道(효자지도)가 於斯至矣(어사지의)로다 孔子曰 五刑之屬(공자왈 오형지속)이 三千(삼천)이로되 而罪莫大於不孝(이죄막대어불효)라하시니라

    頑: 완고할 완. ?: 어리석을 은. 烝烝: 끈임없이. 乂: 다스릴 예.

  (解釋) 옛적에, 위대하신 舜임금의,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모질어서, 일찍이 순을 죽이려 하거늘, 순은 효도로써 화합하고, 끊임없이 다스려,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셨으니, 효자의 도리가, 여기에서 지극하였다. 공자께서는 "五刑에 해당하는 죄목이, 삼천 가지이지만, 그 중에서 불효보다 더 큰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3. 군신유의(君臣有義)

* 君臣(군신)은 天地之分(천지지분)이라 尊且貴焉(존차귀언)하며 卑且賤焉(비차천언)하니 尊貴之使卑賤(존귀지사비천)과 卑賤之事尊貴(비천지사존귀)는 天地之常經(천지지상경)이며 古今之通義(고금지통의)라

  (解釋) 임금과 신하는 하늘과 땅처럼 분명히 구분되는 관계이다. 임금은 높고 귀하며, 신하는 낮고 천하니, 존귀한 이가 비천한 이를 부리고, 비천한 이가 존귀한 이를 섬기는 것은, 천지간의 어디에나 통용되는 도리이며, 예나 지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의리이다.


* 是故(시고)로 君者(군자)는 體元而發號施令者也(체원이발호시령자야)요 臣者(신자)는 調元而陳善閉邪者也(조원이진선폐사자야)라 會遇之際(회우지제)에 各盡其道(각진기도)하여 同寅協恭(동인협공)하여 以臻至治(이진지치)하나니

  (解釋) 이 때문에, 임금은, 元의 도리를 體行하여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고, 신하는 임금을 도와 착한 일을 아뢰고 부정한 일을 막는 존재이다. 임금과 신하가 만날 때에, 각각 자신의 도리를 극진히 하여, 함께 공경하여, 지극한 정치를 이루어야 한다.

* 苟或君而不能盡君道(구혹군이불능진군도)하며 臣而不能修臣職(신이불능수신직)이면 不可與共治天下國家也(불가여공치천하국가야)니라 雖然(수연)이나 吾君不能(오군불능)을 謂之賊(위지적)이니라.

  (解釋) 만약 혹시라도 임금이면서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며, 신하이면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함께 천하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 비록 그렇지만, 우리 임금은 훌륭한 정치를 베풀 수 없다고 말하는 이를, 임금을 해치는 자라고 하니라.


* 昔者(석자)에 商紂暴虐(상주포학)이어늘 比干(비우)이 諫而死(간이사)하니 忠臣之節(충신지절)이 於斯盡矣(어사진의)로다 孔子曰 臣事君以忠(공자왈 신사군이충)이라하시니라

  (解釋) 옛적에, 商나라 임금 紂(주)가 포학한 짓을 하자, 比干이, 간하다가 목숨을 잃었으니, 충신의 절개가, 여기서 극진했다. 공자께서는 신하는 임금을 忠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셨다.


4. 부부유별(夫婦有別)

* 夫婦(부부)는 二姓之合(이성지합)이라 生民之始(생민지시)며 萬福之原(만복지원)이니 行媒議婚(행매의혼)하며 納幣親迎者(납폐친영자)는 厚其別也(후기별야)라 是故(시고)로 娶妻(취처, 아내를 얻음)하되 不娶同姓(불취동성)하며 爲宮室(위궁실)하되 辨內外(변내외)하여 男子(남자)는 居外而不言內(거외이불언내)하고 婦人(부인)은 居內而不言外(거내이불언외)하나니

  (解釋) 남편과 아내는, 두 성이 합한 관계이다. 백성들이 태어난 시초이며, 모든 복의 근원이니, 중매를 시행하여 혼인을 의논하며, 폐백을 드리고 친히 맞이하는 것은, 그 區別을 두터이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맞아들이되, 같은 姓은 취하지 않으며, 집을 짓되, 안과 밖을 구별하여, 남자는 밖에 거처하여 안의 일에 대해 말하지 않고, 부인은 안에 거처하여 밖의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 苟能莊以對之(구능장이대지)하여 以體乾健之道(이체건건지도)하고 柔以正之(유이정지)하여 以承坤順之義(이승곤순지의)면 則家道正矣(즉가도정의)어니와 反是而夫不能專制(반시이부불능전제)하여 御之不以其道(어지불이기도)하고 婦乘其夫(부승기부)하여 事之不以其義(사지불이기의)하여 昧三從之道(미삼종지도)하고 有七去之惡(유칠거지악)이면 則家道索矣(즉가도삭의)리라

  (解釋) 만일 <남편이> 씩씩함으로써 대하여, 하늘의 굳건한 도리를 體行하고, <아내는> 부드러움으로써 바로잡아, 땅이 하늘에 순종하는 도리를 받든다면, 집안의 도리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만약 이와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여, 올바른 도리로 다스리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의 약점을 틈 타, 올바른 도리로 섬기지 않아서, 三從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七去에 해당하는 악행이 있으면, 집안의 법도가 무너질 것이다.


* 須是夫敬其身(수시부경기신)하여 以帥其婦(이사기부)하고 婦敬其身(부경기신)하여 以承其夫(이승기부)하여 內外和順(내외화순)이라야 父母其安樂之矣(부모기안락지의)시리라

  (解釋) 모름지기 남편은 자기 몸을 삼가서, 아내를 잘 거느리고, 아내는 자기 몸을 공경하여, 남편을 잘 받들어서, 내외가 화순해야, 부모님께서 편안하고 즐거워하실 것이다.


* 昔者(석자)에 ?缺(극결)이 ?(누)어늘, 其妻?之(기처 엽지)하되 敬(경)하여 相待如賓(상대여빈)하니 夫婦之道(부부지도)가 當如是也(당여시야)니라 子思曰(자사왈) 君子之道(군자지도)는 造端乎夫婦(조단호부부)라하시니라

?:밭에 김을 맬 누.  ?:들밥 낼 엽. 

  (解釋) 옛적에 ?缺이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때, 그 아내가 새참을 내왔는데, 서로 공경하여, 상대하기를 마치 손님 모시듯 하였으니, 부부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子思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의 도리는, 부부 사이에서 비롯된다."고 하셨다.

5. 장유유서(長幼有序)

* 長幼(장유)는天倫之序(천륜지서)라 兄之所以爲兄(형지소이위형)하고 弟之所以爲弟(제지소이위제)하야 長幼之道(장유지도)가 所自出也(소자출야)라 蓋宗族鄕黨(개종족향당)에 皆有長幼(개유장유)하니 不可紊也(불가문야)라

  (解釋) 어른과 아이는, 하늘이 차례를 지어 준 관계이다. 형이 형 노릇하고, 아우가 아우 노릇 하는 것이, 어른과 어린이의 도리가, 비롯된 유래이다. 종족과 향당 에는, 모두 어른과 아이가 있으니, 이를 문란 시켜서는 안 된다.


* 徐行後長者(서행후장자)를 謂之弟(위지제)요 疾行先長者(질행선장자)를 謂之不弟(위지불제)니 是故(시고)로 年長以倍則父事之(년장이배즉부사지)하고 十年以長則兄事之(십년이장즉형사지)하고 五年以長則肩隨之(오년이장즉견수지)니

長慈幼(장자유)하며 幼敬長然後(유경장연후)에야 無侮少陵長之弊(무모소릉장지폐)하여 而人道正矣(이인도정의)리라

  (解釋) 천천히 걸어서 어른보다 뒤에 쳐져 가는 것을, 공손한 태도라고 이르고, 빨리 걸어서 어른보다 앞서 걸어가는 것을, 공손하지 못한 태도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나이가 갑절 많으면 어버이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나이가 열 살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나이가 다섯 살이 많으면 어깨 폭 만큼 뒤쳐져 따라가니, 어른은 어린 사람을 사랑하며, 어린 사람은 어른을 공경한 뒤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거나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져서, 사람의 도리가 바로 설 것이다.


* 而況兄弟(이황형제)는 同氣之人(동기지인)이라 骨肉至親(골육지친)이니 尤當友愛(우당우애)요 不可藏怒宿怨(불가장노숙원)하여 以敗天常也(이패천상야)니라

(解釋) 하물며 형제간은, 기운을 함께 나눈 사람이다. 뼈와 살을 나눈 지극히 가까운 관계이니, 더욱 우애해야 할 것이요, 노여움을 마음속에 감추고 원한을 묵혀서, 하늘의 떳떳한 도리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  昔者(석자)에 司馬光(사마광)이 與其兄伯康(여기형백강)으로 友愛尤篤(우애우독)하여 敬之如嚴父(경지여엄부)하고 保之如?兒(보지여영아)하니 兄弟之道(형제지도)가 當如是也(당여시야)니라 孟子曰(맹자왈) 孩提之童(해제지동)이 無不知愛其親(무부지애기친)이며 及其長也(급기장야)하여는 無不知敬其兄也(무부지경기형야)라 하시니라

(解釋) 옛적에 司馬光이, 그의 형 伯康과 더불어, 우애하기를 더욱 돈독히 하여, 형을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하고, 어린 아이처럼 보호하였으니, 형제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맹자께서는, "웃을 줄 알고 손을 잡아주고 안아 줄만한 아이도, 자기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경우가 없으며, 그가 성장해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하셨다.


6. 붕우유신(朋友有信)

* 朋友(붕우)는 同類之人(동류지인)이라 益者三友(익자삼우)요 損者三友(손자삼우)니 友直(우직)하며 友諒(우량)하며 友多聞(우다문)이면 益矣(익의)요

友便僻(우편벽)하며 友善柔(우선유)하며 友便獰(우편녕)이면 損矣(손의)리라

(解釋) 붕우는 부류가 같은 사람이다. 유익한 벗이 세 종류 있고, 해로운 벗이 세 종류가 있으니, 정직한 사람을 벗하며, 살피는 사람을 벗하며, 식견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이롭고, 치우친 사람을 벗하며, 구미만 맞추는 사람을 벗하며, 말재주만 뛰어난 사람을 벗하면, 해롭다.


* 友也者(우야자)는 友其德也(우기덕야)니 自天子(자천자)로 至於庶人(지어서인)히 未有不須友以成者(미유불수우이성자)하니 其分(기분)이 若疎(약소)나 而其所關(이기소관)이 爲至親(위지친)하니라.

(解釋) 벗을 사귀는 것은, 그 사람의 德性을 보고 사귀는 것이다. 天子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벗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그 관계가, 소원한 것 같지만, 관련되는 것이, 지극히 가까운 관계와 같다.


* 是故(시고)로 取友(취우)를 必端人(필단인)하며 擇友(택우)를 必勝己(필승기)니 要當責善以信(요당책선이신)하며 切切時時(절절시시)하여 忠告而善道之(충고이선도지)하다가 不可則止(불가즉지)니라

  (解釋) 이 때문에, 벗을 사귈 때에는, 반드시 단정한 사람을 사귀며, 벗을 가릴 때에는, 반드시 나보다 나은 사람을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마땅히 진실한 태도를 지니고 좋은 일로 권면할 것을 요구하며 간절하고 자세하게 권면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알려주고 선으로 인도하다가, 안 되면 친구 관계를 그만두어야 한다.


* 苟或交遊之際(구혹교우지제)에 不以切磋琢磨(불이절차탁마)로 爲相與(위상여)하고 但以歡狎戱謔(단이환압허학)으로 爲相親(위상친)이면 則安能久而不疎乎(즉안능구이불소호)리오

  (解釋) 만약 혹시라도, 서로 사귈 때에, 切磋琢磨하는 것으로 서로, 함께 하지 아니하고, 다만 기뻐하고 친하며 장난하고 농담하는 것으로, 서로 가까이 한다면, 어찌 오래 되어도 소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 昔者(석자)에 晏子與人交(안자여인교)하되 久而敬之(구이경지)하니 朋友之道(붕우지도)가 當如是也(당여시야)니라 孔子曰(공자왈) 不信乎朋友(불신호붕우)면 不獲乎上矣(불획호상의)리라 信乎朋友有道(신호붕우에유도)하니 不順乎親(불순호친)이면 不信乎朋友矣(불신호붕우의)라하셨다

(解釋) 옛적에, 晏子는 남과 사귀되, 오래 되어도 상대를 공경하였으니, 붕우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孔子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였다. "친구들에게서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에게서 신임을 얻는데, 일정한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에게서 순종한다고 인정받지 못하면, 친구들의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7. 총론(總論 )<1> 全體에 共通되는 論이라.

* 此五品者(차오품자)는 天敍之典而人理之所固有者(천서지전이인리지소고유자)라 人之行(인지행)이 不外乎五者而唯孝爲百行之源(불외호오자이유효위백행지원)이라

解釋 : 이 다섯 가지 일은, 하늘이 펼쳐 준 모범이고 사람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도리이다. 사람의 행실이, 이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 是以(시이)로 孝子之事親也(효자지사친야)는 鷄初鳴(계초명)이어든 咸?漱(함관수)하고 適父母之所(적부모지소)하여 下氣怡聲(하기이성)하여 問衣?寒(문의욱한)하며 問何食飮(문하식음)하며 冬溫而夏淸(동온이하청)하며 昏定而晨省(혼정이신성)하며 出必告(출필고)하며 反必面(반필면)하며 不遠遊(불원유)하며 遊必有方(유필유방)하며 不敢有其身(불감유기신)하며 不敢私其財(불감사기재)니라

(解釋) 이 때문에,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옷이 더운지 추운지를 여쭈며, 무엇을 잡수시고 마시고 싶은지를 여쭈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돌봐드리고 새벽에는 안부를 여쭈며, 외출할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님을 대면하며, 멀리 나가 놀지 않으며, 나가 놀되 반드시 일정한 장소를 두며, 감히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감히 재물을 자기 것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 父母愛之(부모애지)어시든 喜而不忘(희이불망)하며 惡之(오지)어시든 懼而無怨(구이무원)하며 有過(유과)어시든 諫而不逆(간이불역)하고 三諫而不聽(삼간이불청)이어시든 則號泣而隨之(즉호읍이수지)하며 怒而撻之流血(노이달지유혈)이라도 不敢疾怨(불감질원)하며 居則致其敬(거즉치기경)하고 養則致其樂(양즉치기락)하고 病則致其憂(병즉치기우)하고 喪則致其哀(상즉치기애)하고 祭則致其嚴(제즉치기엄)이니라

  (解釋)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거든, 기뻐하되 잊지 않으며, 미워하시거든, 두려워하되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님께서 과실을 저지르시면, 말리되 거스르지 않으며, 세 번 간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시거든, 부르짖고 울면서 따르며, 부모님께서 怒하여 종아리를 때려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치 않으며, 거처할 때에는 공경함을 극진히 하고, 봉양할 때는 즐거움을 극진히 하고, 병환이 드셨을 때는 근심을 극진히 해야 하고, 喪을 당해서는 슬픔을 극진히 하고, 제사 지낼 때는 엄숙함을 극진히 해야 한다.


* 若夫人子之不孝也(약부인자지불효야)는 不愛其親(불애기친)이요 而愛他人(이애타인)하며 不敬其親(불경기친)이요 而敬他人(이경타인)하며 惰其四肢(타기사지)하여 不顧父母之養(불고부모지양)하며 博奕好飮酒(박혁호음주)하여 不顧父母之養(불고부모지양)하며 好貨財(호화재)하며 私妻子(사처자)하여 不顧父母之養(불고부모지양)하며 從耳目之好(종이목지호)하여 以爲父母(이위부모륙)하며 好勇鬪狼(호용투낭)하여 以危父母(이위부모)니라

惰 : 게으를 타. 奕 :바둑 혁. :욕될 육. 

(解釋) 부모님께 불효하는 자식은, 자기 어버이는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며, 자기 어버이는 공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공경하며, 四肢를 게을리 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장기나 바둑,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을 사랑해서,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耳目의 욕망을 좇아,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맹을 좋아하여 싸우고 사나워서, 부모님을 위태롭게 한다.

8. 總論 <2>

* (희)라 欲觀其人(욕관기인)의 行之善不善(행지선불선)인대 必先觀其人之孝不孝(필선관기인지효불효)니 可不愼哉(가불신재)며 可不懼哉(가불구재)아 苟能孝於其親(구능효어기친)이면 則推之於君臣也(즉추지어군신야)와 夫婦也(부부야)와 長幼也(장유야)와 朋友也(붕우야)에 何往而不可哉(하왕이불가재)하리오 然則孝之於人(연즉효지어인)에 大矣(대의)로되 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이역비고원난행지사야)라 : 탄식할 희. 推: 밀 추.

(解釋) 아! 그 사람의, 행실이 착한지 아닌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이 효도하는지 아닌지를 살펴볼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 어버이에게 효도한다면, 그 마음을 군신간과 부부간과 장유간과 붕우간에 미루어감에 어떤 경우에 적용한들 옳지 않음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孝는 사람에게, 중대한 것이며, 또한 高遠(높고 멀어)하여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연)이나 自非生知者(자비생지자)면 必資學問而知之(필자학문이지지)니 學問之道(학문지도)는 無他(무타)라 將欲通古今(장욕통고금)하며 達事理(달사리)하여 存之於心(존지어심)하며 體之於身(체지어신)이니 可不勉其學問之力哉(가불면기학문지력재)아 玆用(자용)에 其歷代要義(기역대요의)하여 書之于左(서지우좌)하노라

  (解釋) 그러나, 스스로 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 이가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에 의지하여 알 수 있으니, 학문하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장차 古今의 事理를 통달하여 마음 속에 보존하며, 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니, 학문하는 힘을 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역대의 중요한 의리를 뽑아서,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둔다.


* 蓋自太極(개자태극조판)하여 陰陽始分(음양시분)으로 五行(오행)이 相生(상생)에 先有理氣(선유리기)라 人物之生(인물지생)이 林林總總(림림총총)하더니 於是(어시)에 聖人(성인)이 首出(수출)하사 繼天立極(계천립극)하시니 天皇氏(천황씨)와 地皇氏(지황시)와 人皇氏(인황씨)와 有巢氏(유소씨)와 燧人氏(수인씨)가 是爲太古(시위태고)니 在書契以前(재서계이전)이라 不可考(불가고)로다 肇:처음 조. 隧:부싯돌 수. 書契:중국 고대문자.

  (解釋) 태극이 처음으로 판별되어, 음과 양이 비로소 나누어진 시기로부터, 五行이, 서로 생성됨에, 먼저 理와 氣가 있었다. 사람과 물건이 많이 생성되더니, 이에, 聖人이, 먼저 나타나서,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인간의 표준을 세웠으니, 天皇氏와 地皇氏와 人皇氏와 有巢氏와 燧人氏가 태고시절의 성인이다. 書契문자가 나타나기 이전이기 때문에, 상고할 수가 없다.


* 伏羲氏始劃 八卦(복희씨시획 팔괘)하며 造書契(조서계)하여 以代結繩之政(이대결승지정)하시고 神農氏作??(신농씨작뢰사)하며 製醫藥(제의약)하시고 黃帝氏用干戈(황제씨용간과)하며 作舟車(작주거)하며 造曆算(조역산)하며 制音律(제음률)하시니 是爲三皇(시위삼황)이니 至德之世(지덕지세)라 無爲而治(무위이치)하니라    ??: 쟁기, ?는 쟁기날, ?는 그 자루. 結繩文字(결승문자): 태고에 새끼를 매듭지어 그 모양과 수로써 의사를 소통하던 문자. 干:방패 간. 戈:창 과.

  (解釋) 복희씨가 처음으로, 八卦를 긋고, 書契문자를 만들어, 結繩文字(결승문자)를 시행하여 정사를 대신했고, 신농씨가 쟁기와 보습을 만들며, 의술과 약을 만들고, 황제씨가 방패와 창을 사용하며, 배와 수레를 만들었으며, 달력과 산수를 만들며, 音律을 제정하셨으니, 이들을 三皇이라 일컫는다. 이 때는 사람들의 본성이 지극히 순박했기 때문에 인위적인 정치를 베풀지 않고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 少昊(소호)와 ?(전욱)과?(제곡)과 帝堯(제요)와 帝舜(제순)이 是爲五帝(시위오제)라稷契(고기직글)이 佐堯舜(좌요순)하여 而堯舜之治 卓冠百王(이요순지치- 탁관백왕)이라 孔子定書(공자정서)에 斷自唐虞(단자당우)하시니라

  (註解) ?頊:고대 중국의 오제 중의 한 사람. 帝?:五帝 중의 한 분. :부르는소리 고. :조심할 기. 唐虞:중국 도당씨(陶唐氏)와 유우씨(有虞氏)즉 堯舜시대를 말함.

唐虞三代: 堯舜時代에다 夏, 殷, 周(하,은,주) 삼대를 합해 부르는 말.

  (解釋) 少昊와 ?頊과 帝?과 요임금, 순임금을 五帝라 일컫는다. 皐陶(도)와 夔와 稷과 契이 요임금과 순임금을 보좌했으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다스림이 모든 왕의 으뜸이 되었다. 공자께서 書經을 刪定하심에 唐虞時代로부터 단정하셨다.


* 夏禹(하우)와 商湯(상탕)과 周文王武王(주문왕무왕)이 是爲三王(시위삼왕)이니 歷年(역년)이 或四百(혹사백)하며 或六百(혹육백)하며 或八百(혹팔백)하니 三代之隆(삼대지융)을 後世莫及(후세막급)이요 而商之伊尹傅說(이상지이윤전설)과 周之周公召公(주지주공소공)이 皆賢臣也(개현신야)라 周公(주공)이 制禮作樂(제례작악)하시니 典章法度(전장법도)가 粲然極備(찬연극비)하더니라.

  粲然: 번쩍거리며 빛나는 모양.

(解釋) 夏나라 우왕과 商나라 탕왕과 周나라 문왕?무왕을 三王이라 일컫는다. 왕조의 수명이 어떤 경우는 400년이며 어떤 경우는 600년이며 어떤 경우는 800년이었으니 三代 시절에 융성했던 문물을 후세에는 미치지 못했고 상나라의 伊尹이나 傅說, 주나라의 周公과 召公이 모두 뛰어난 신하였다. 周公이 禮樂을 제작하셨으니 典章과 법도가 지극히 찬연하게 갖추어졌다.

* 及其衰也(급기쇠야)하여 五覇樓諸侯(오패누제후)하여 以匡王室(이광왕실)하니 若齊桓公(약제환공)과 晉文公(진문공)과 宋襄公(송양공)과 秦穆公(진목공)과 楚莊王(초장왕)이 迭主夏盟(질주하맹)하니 王靈(왕령)이 不振(부진)하니라

(解釋) 周나라가 쇠미함에 미쳐 五覇가 제후들을 이끌어 왕실을 바로 세웠으니 이를테면 제나라 桓公, 진나라 文公, 송나라 襄公, 진나라 穆公, 초나라 莊王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중국의 맹약을 주도하였으니 왕실의 위엄이 떨쳐지지 못했다.

9. 總論 <3>

* 孔子以天縱之聖(공자이천종지성)으로 轍環天下(철환천하)하사 道不得行于世(도부득행우세)하여 刪詩書(책시서)하시며 定禮樂(정례악)하시며 贊周易(찬주역)하시며 修春秋(수춘추)하사 繼往聖(계왕성), 開來學(개래학)하시고 而傳其道者(이전기도자)는 顔子曾子(안자증자)라 事在論語(사재논어)하니라 曾子之門人(증자지문인)이 述大學(술대학)하니라

  (解釋) 공자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수레를 타고 천하를 주유(周遊) 하셨으나, 道가 세상에서 시행되지 않아서, ≪시경≫과 ≪서경≫을 刪定하시며, 禮와 樂을 결정하시며, ≪주역≫을 해설하시며, 춘추를 편수하셔서, 지나간 성인을 계승하고, 후세의 학자들을 인도하셨고, 그 도를 전수 받은 이는, 顔子와 曾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기록은 ≪논어≫에 있다. 증자의 문인이 대학을 기술하였다.


* 列國則曰魯(열국즉왈노)와 曰衛(왈위)와 曰晉(왈진)과 曰鄭(왈정)과 曰趙(왈조)와 曰蔡(왈채)와 曰燕(왈연)과 曰吳(왈오)와 曰齊(왈제)와 曰宋(왈송)과 曰陳(왈진)과 曰楚(왈초)와 曰秦(왈진)이니 干戈日尋(간과일심)하여 戰爭不息(전쟁불식)하여 遂爲戰國(수위전국)하니 秦楚燕齊韓魏趙(진초연제한위조)가 是爲七雄(시위칠웅)이라 

  (解釋) 열국은 魯?衛?晉?鄭?趙?蔡?燕?吳?齊?宋?陳?楚?秦나라 등이니 방패와 창이 날마다 이어져 전쟁이 끊이지 않아 마침내 전국시대가 되었으니 秦?楚?燕?齊?韓?魏?趙의 일곱 나라를 戰國 七雄이라 일컫는다.


* 孔子之孫子思(공자지손자사) 生斯時(생사시)하사 作中庸(작중용)하시고 其門人之弟孟軻(기문인지제맹가) 陳王道於齊梁(진왕도어제양)하사 道又不行(도우불행)하여 作孟子七篇(작맹자칠편)하시되 而異端縱橫功利之說(이이단종힁공리지설)이 盛行(성행)이라 吾道不傳(오도불전)하니라

(解釋) 공자의 손자인 子思가, 이 시기에 태어나, ≪中庸≫을 저술하셨고, 그 문인의 제자인 孟軻가,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왕도정치를 진술하셨는데, 도가 또 시행되지 못하여, ≪孟子≫ 7편을 저술하셨으나, 이단과 종횡과 공리의 학설이, 성행해서, 우리 유학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였다.


* 及秦始皇(급진시황)하여 呑二周(탄이주) 滅六國(멸육국)하며 廢封建爲郡縣(폐봉건위군현)하며 焚詩書(분시서), 坑儒生(갱유생)하니 二世而亡(이세이망)하니라

(解釋) 진시황 시대에 이르러서는, 두 주나라를 병탄하고, 여섯 제후국을 멸망시키며,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시행하며, 詩書를 불태우고 유생들을 구덩이 속에 파묻어 죽이니, 2代만에 멸망하였다. 분서갱유(焚書坑儒)

10. 總論 < 4 >

* 漢高祖起布衣成帝業(한고조기포의성제업)하여 歷年四百(역년사백)하되 在明帝時(재명제시)하여 西域佛法(서역불법)이 始通中國(시통중국)하여 惑世誣民(혹세무민)하니라 蜀漢(촉한)과(오)와 (위) 三國 鼎峙而諸葛亮(정치이제갈량)이 仗義扶漢(장의부한)하다가 病卒軍中(병졸군중)하니라 

  (解釋) 한나라 고조가 布衣로 일어나 황제의 위업을 이루어서, 왕조의 수명이 4백년에 이르렀는데, 明帝때에, 西域의 불교가, 처음으로 중국에 유통하여,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들을 속였다. 蜀漢과 吳와 魏의 세 나라가 솥발처럼 대치하고 있었는데, 제갈량이 의리를 지켜 漢나라를 부지하다가, 병이 들어 전쟁터에서 죽었다.


* 晉有天下(진유천하)에 歷年百餘(역년백여)하되 五胡亂華(오호난화)하니 宋齊梁陳(송제양진)에 南北分裂(남북분열)이러니 隋能混一(수능혼일)하되 歷年三十(역년삼십)하니라

  (解釋) 晉나라가 천하를 다스림에, 왕조의 수명이 100여 년에 이르렀는데, 다섯 오랑캐나라가 중화를 어지럽히니, 宋?齊?梁?陳에,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隋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왕조의 수명이 30년에 그쳤다.


* 唐高祖(당고조)와 太宗(태종)이 乘隋室亂(승수실난)하여 化家爲國(화가위국)하여 歷年三百(역년삼백)하니라 後梁(후량)과 後唐(후당)과 後晉(후진)과 後漢(후한)과 後周(후주) 是爲五季(시위오계)니 朝得暮失(조득모실)하여 大亂(대란)이 極矣(극의)라

(解釋) 당나라 고조와, 태종이, 隋나라 왕실의 어지러움을 틈타, 일개 집안을 변화시켜 나라로 만들어, 왕조의 수명이 300년에 이르렀다. 後梁과 後唐과 後晉과 後漢과 後周를 五季라고 하니, 아침에 나라를 얻었다가 저녁이면 잃어버려서, 크게 혼란함이, 극도에 이르렀다.


* 宋太祖立國之初(송태조입국지초)에 五星(오성)이 聚奎(취규)하여 濂洛關?(렴락관민)에 諸賢(제현)이 輩出(배출)하니 若周敦?(약주돈이)와 程顥(정호)와 程?(정이)와 司馬光(사마광)과 張載(장재)와 邵雍(소옹)과 朱熹(주희)가 相繼而起(상계이기)하여 以闡明斯道(이천명사도)로 爲己任(위기임)하되 身且不得見容(신차부득견용)하고 而朱子集諸家說(이자집제가설)하사 註四書五經(사서오경)하시니 其有功於學者(기유공어학자) 大矣(대의)로다

(濂洛關?이란 濂溪의 周燉?(字:茂叔). 洛陽의 程顥(字:伯淳, 號:明道). 程顥의 아우 程?(字:正叔, 號:伊川). 關中의 張載(字:子厚, 號:橫渠). ?中의 朱熹(字:元晦, 號:晦庵)등 이들이 主唱한 儒敎를 宋學?道學?濂洛關?之學이라고도 한다. 司馬光:宋나라 臣이며 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解釋) 송나라 태조가 국가를 세운 초기에, 다섯별이, 奎星에 모여, 濂?洛?關??에, 여러 현인들이, 배출되었으니, 周敦?와 程顥와 程?와 司馬光과 張載와 邵雍과 朱熹 같은 학자들이, 서로 이어 나타나, 이 유학의 도를 밝히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로 삼았지만, 자기 몸조차도 용납 받지 못했다. 주자가 諸家의 학설을 모아서, 사서와 오경을 주해하셨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크게 공을 세웠다.


* 然而國勢不競(연이국세불경)하여 歷年三百(역년삼백)하니 契丹(걸안)과 蒙古(몽고)와(요)와 (금)이 迭爲侵?(질위침질)하고 而及其垂亡(이급기수망)하여 文天祥(문천상)이 竭忠報宋(갈충보송)하다가 竟死燕獄(경사연옥)하니라 

         迭:바꿀 질.  ?:번갈아 질.  竭:다할 갈.  竟:마침내 경.

  (解釋) 그러나 국가의 힘이 강하지 못하여, 왕조의 수명이 300년에 그쳤으니, 거란과 몽골과 遼와 金이, 차례대로 침략하고, 망조를 드리움에 미쳐, 文天祥이, 충성을 다하여 송나라에 보답하다가, 마침내 연경의 옥에서 죽었다.


* 胡元(호원)이 滅宋(멸송)하고 混一區宇(혼일구우)하여 綿歷百年(면역백년)하니 夷狄之盛(이적지성)이 未有若此者也(미유약차자야)로다 天厭穢德(천염예덕)이라 大明(대명)이 中天(중천)하사 聖繼神承(성계신승)하시니(오)千萬年(천만년)이로다.

          夷는 동방 오랑케. 狄은 북방 오랑케. 厭:싫을 염. 穢:더러울 예.

  (解釋) 오랑캐 元나라가, 宋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여, 면면히 백년을 이어갔으니, 오랑캐가 세력을 떨침이, 이 때만한 적이 없었다. 하늘이 더러운 덕을 싫어하셨는지라, 大明이, 하늘 한 가운데로 떠올라, 聖人과 神人이 계승하였으니, 아! 천만년을 이어가리로다.


* 嗚呼(오호)라 三綱五常之道(삼강오상지도)가 與天地(여천지)로 相終始(상종시)하니 三代以前(삼대이전)에는 聖帝明王(성제명왕)과 賢相良佐(현상양좌)가 相與講明之(상여강명지)라 (고)로 治日(치일)이 常多(상다)하고 亂日(난일)이 常少(상소)하더니 三代以後(삼대이후)에는 庸君暗主(용군암주)와 亂臣賊子(난신적자)가 相與敗壞之(상여패괴지)라(고)로 亂日(난일)이 常多(상다)하고 治日(치일)이 常少(상소)하니 其所以世之治亂安危(기소이세지치난안위)와 國之興廢存亡(국지흥폐존망)이 皆由於人倫之明不明如何耳(개유어인륜지명불명여하이)라 可不察哉(가불찰재)아

(解釋) 아! 三綱五常의 도리는, 천지와 더불어, 始終을 함께 하니, 三代 이전에는, 성스러운 임금, 명철한 군주와, 어진 재상과 뛰어난 보좌관들이, 서로 함께 강론하여 밝혔다. 그 때문에, 다스려진 날이 항상 많았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적었는데, 三代 이후에는, 용렬한 임금, 어두운 군주들과,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신하와 집안의 도리를 해치는 자식들이, 서로 함께 그것을 무너뜨렸다. 그 때문에,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고, 다스려진 날이 항상 적었다. 세상이 다스려지고 어지러우며 편안하고 위태로운 것과, 나라가  일어나고 폐지되며 보존되고 멸망하는 까닭은, 모두 人倫이 밝혀졌느냐 밝혀지지 않았느냐 가 어떠한지 에서 말미암는다.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11. 總論 <5>

* 東方(동방)에 初無君長(초무군장)하더니 有神人(유신인)이 降于太白山檀木下(강우태백산단목하)하여 神靈明智(신령명지)어늘 國人(국인)이 立以爲君(립이위군)하니 與堯(여요)로 竝立(병립)하여 國號(국호)를 朝鮮(조선)이라 하니 是爲檀君(시위단군)이라

  (解釋) 동방에, 처음에는 君長이 없었는데, 神人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신령스럽고 지혜가 밝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임금으로 삼았다. 堯임금과 동시대에 즉위하여, 국호를 朝鮮이라고 했으니, 이가 檀君이다.


* 殷太師箕子 封于朝鮮(봉기자우조선)하여 率衆東來하사 敎民禮儀(교민예의)하여 設八條之敎(설팔조지교)하시니 有仁賢之化(유인현지화)하더라  

  (解釋) 은 태사 기자가, 조선에 봉하니 기자가 무리를 이끌고 동쪽에 와서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쳐서, 여덟 조목의 가르침〔八條之敎〕를 베풀었으니 어진 사람 기자의 교화가 있었다.


* 燕人衛滿(연인위만)이 因盧?亂(인노관란)하여 亡命來(망명래)하여 誘逐箕準(유축기준)하고 據王儉城(거왕검성)하더니 至孫右渠(지손우거)하여 漢武帝討滅之(한무제토멸지)하고 分其地(분기지)하여 置樂浪臨屯玄?眞蕃四郡(치낭랑임둔현토진번사군)하다 昭帝以平那玄?(소제이평나현토)로 爲平州(위평주)하고 臨屯樂浪(임둔낭랑)으로 爲東府二都督府(위동부이도독부)하다

(解釋) 燕나라 사람 衛滿이, 盧?의 난리를 피하여, 망명해 와서, 箕準을 유인하여 쫓아내고, 王儉城을 차지하였는데, 손자인 右渠王대에 이르러, 한나라 무제가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樂浪?臨屯?玄??眞蕃의 四郡을 만들었다. 昭帝가 平那와 玄?를 합쳐서 平州로 만들고, 임둔과 낙랑을 동부의 두 都督府로 만들었다.


* 箕準(기준)이 避衛滿(피위만)하여 浮海而南(부해이남)하여 居金馬郡(거금마군)하니 是爲馬韓(시위마한)이라 秦亡人(진망인)이 避人韓(피인한)이어늘(한)이 割東界以與(할동계이여)하니 是爲辰韓(시위진한)이라 弁韓則立國於韓地(변한즉입국어한지)하니 不知其始祖年代(부지기시조연대)라 是爲三韓(시위삼한)이라

  (解釋) 箕準이, 위만을 피해, 바다에 떠서 남쪽으로 내려와, 金馬郡에 정착했으니, 이것이 馬韓이다. 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이, 진나라 사람을 피하여 韓나라로 들어오자, 韓나라가 동쪽 영토를 분할하여 제공하니, 이것이 辰韓이다. 弁韓은 韓나라의 영토에 나라를 세웠으니 그 시조와 연대를 알 수 없다. 이것이 三韓이다.


* 新羅始祖赫居世(신라시조혁거세)는 都辰韓地(도진한지)하여 以朴爲姓(이박위성)하고 高句麗始祖朱蒙(고구려시조주몽)은 至卒本(지졸본)하여 自稱高辛之後(자칭고신지후)로라 하여 因姓高(인성고)하고 百濟始祖溫祚(백제시조온조)는 都河南慰禮城(도하남위례성)하여 以扶餘(이부여)로 爲氏(위씨)하여 三國(삼국)이 各保一隅(각보일우)하여 互相侵伐(호상침벌)하더니

(解釋) 신라의 시조 赫居世는, 진한의 영토에 도읍을 정하여,00 朴을 성씨로 삼고, 고구려의 시조인 朱蒙은, 卒本땅에 이르러, 스스로 高辛씨의 후예라고 일컬어, 그에 따라 高를 성씨로 삼았고, 백제의 시조인 溫祚는, 河南땅 慰禮城을 도읍지로 정하여, 扶餘를 성씨로 삼아서, 삼국이, 각각 한 모퉁이를 차지하여, 서로 공격하였다.


  * 其後(기후)에 唐高宗(당고종)이 滅百濟高句麗(멸백제고구려)하고 分其地(분기지)하여 置都督府(치도독부)하여 以劉仁願 薛仁貴(이유인원 설인귀)로 留鎭撫之(유진무지)하니 百濟(백제)는 歷年(역년)이 六百七十八年(678년)이요 高句麗(고구려)는 七百五年(705년)이라

  (解釋) 그 뒤에, 당나라 고종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都督府를 설치하여, 劉仁願과 薛仁貴로 하여금, 머물러서 진무케 하였으니, 백제는 왕조의 수명이 678년에 이르렀고, 고구려는 705년이었다.


* 新羅之末(신라지말)에 弓裔叛于北京(궁예반우북경)하여 國號(국호)를 泰封(태봉)이라하고 甄萱(견훤)이 叛據完山(반거완산)하여 自稱後百濟(자칭후백제)로라하다 新羅亡(신라망)하니 朴昔金三姓(박석금삼성)이 相傳(상전)하여 歷年(역년)이 九百九十二年(992년)이라.

(解釋) 신라의 말기에, 弓裔가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泰封이라 하였고, 甄萱이, 반란을 일으켜 完山州를 점거하여, 스스로 後百濟라고 일컬었다. 신라가 멸망하니, 朴?昔?金의 세 성씨가, 서로 왕위를 전수하여, 왕조의 수명이, 992년에 이르렀다.

* 泰封諸將(태봉제장)이 立麗祖王建(입려조왕건)하여 爲王(위왕)하니 國號(국호)를 高麗(고려)라 하여 剋殘群凶(극잔군흉)하고 統合三韓(통합삼한)하여 移都松嶽(이도송악)이러시니 至于季世(지우계세)하여 恭愍(공민)이 無嗣(무사)하고 僞主辛禑(위주신우)가 昏暴自恣(혼폭자자)하며 而王瑤不君(이왕요불군)하여 遂至於亡(수지어망)하니 歷年(역년)이 四百七十五年(475년)이라

(解釋) 泰封의 여러 장수들이, 고려의 시조 왕건을 세워서, 왕으로 삼으니, 國號를, 高麗라고 하여, 여러 흉악한 인물들을 이겨 없애고, 三韓을 통합하여, 도읍을 松嶽으로 옮겼다. 고려의 말년에 이르러, 恭愍에게, 後嗣가 없고, 가짜 임금 辛禑가, 어둡고 포악하며 스스로 방자하였으며, 恭讓이 임금 노릇을 못하여, 마침내 망하기에 이르니, 왕조의 수명이, 475년이었다.


* 天命(천명)이 歸于眞主(귀우진주)하니 大明太祖高皇帝賜改國號曰朝鮮(대명태조고황제사개국호왈조선)이어시늘 定鼎于漢陽(정정우한양)하사 聖子神孫(성자신손)이 繼繼繩繩(계계승승)하사 重熙累洽(중희누흡)하사 式至于今(식지우금)하시니 實萬世無疆之休(실만세무강지휴)삿다

(解釋) 天命이, 진정한 군주에게 돌아가니, 明나라 太祖 高皇帝가 국호를 朝鮮이라고 고쳐 내리자, 한양에 도읍을 정하여,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자손들이, 끊임없이 계승하여, 거듭 빛내고 여러 차례 스며들어서, 지금에 이르니, 실로 만세 토록 끝없을 아름다움이로다.


* 於?(어희)라 我國(아국)이 雖僻在海隅(수벽재해우)하여 壤地編小(양지편소)하나 禮樂法度(예악법도)와 衣冠文物(의관물물)을 悉遵華制(실존화제)하여 人倫(인륜)이 明於上(명어상)하고 敎化行於下(교화행어하)하여 風俗之美(풍속지미)가 模擬中華(모의중화)하니 華人(화인)이 稱之曰小中華(칭지왈소중화)라하니 玆豈非箕子之遺化耶(자개비기자지유화야)리오 嗟爾小子(차이소자)는 宜其觀感而興起哉(의기관감이흥기재)인저

(解釋) 아!, 우리나라가, 비록 궁벽하게 바다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영토가 編小하지만, 예악법도와, 의관문물을, 모두 중화의 제도를 따라, 인륜이, 위에서 밝혀지고, 교화가 아래에서 시행되어, 풍속의 아름다움이, 中華를 방불하였다. 이 때문에 중화 인들이, 우리를 小 中華라고 일컬으니, 이 어찌 箕子가 끼쳐준 교화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너희 小子들은 의당 보고 느껴서 興起할지어다.

12. 어제동몽선습서(御製童蒙先習序)

* 夫此書(부차서)는 卽東儒所撰也(즉동유소찬야)라 總冠以五倫(총관이오륜)하고 復以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복이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로 列之于次(열지우차)하고 而其自太極肇判(이기자태극조판)으로 三皇五帝 夏殷周 漢唐宋以至皇朝(삼황오제 하은주 한당송이지황조)히 歷代世系(역대세계)를 悉備錄(섬실비록)하고 逮夫我東(체부아동)에 始檀君 歷三國(시단군 역삼국)하야 至于我朝(지우아조)히 亦爲俱載(역위구재)하니 文雖約而錄則博(문수약이록즉박)하고 卷雖小而包則大(권수소이포즉대)라

(解釋) 이 책은, 바로 우리나라 유학자가 저술한 것이다. 앞에는 五倫을 총론으로 놓고, 다시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의 도리를, 다음에 열거하였으며, 太極이 처음 나뉨으로부터, 三皇?五帝와 夏?殷?周, 漢?唐?宋을 거쳐 皇朝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세계를 상세히 갖추어 기록하고, 우리나라에 미쳐서는, 檀君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를 거쳐, 우리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기록하였으니, 글은 비록 간략하지만 기록한 범위는 넓고, 卷은 비록 작지만 포함하고 있는 뜻은 크다.


* 其況堯舜之道(기황요순지도)는 孝弟而已(효제이기)라 舜之命契(순지명설)하사대 以五品爲重(이오품위중)하시니 此文之冠以五倫者 其意宏矣(차문지관이오륜자 기의굉의)로다(희)라 孝於親然後 忠於君(효어친연후 충어군)하고 弟于兄然後(제우형연후)에 敬于長(경우장)하나니 以此觀之(이차관지)컨대 五倫之中(오륜지중)에 孝弟爲先(효제위선)이라 雖然(수연)이나 詩贊文王曰 於緝熙敬止(시찬문왕왈)삿다하니 敬者(경자)는 成始終徹上下之工夫也(성시종철상하지공부야)라(고)로 大學要旨(대학요지)는 卽敬字也(즉경자야)요 中庸要旨(중용요지)는 卽誠字也(즉성자야)니 誠敬(성경)이 亦於學問(역어학문)에 車兩輪鳥兩翼者也(차양륜조양익자)라

(解釋) 더욱이 요순의 도는, 효도와 공경일 뿐이다. 순임금이 契(설)에게 명령하시되, 五品(五倫)을 가장 중시하셨으니, 이 책에서 五倫을 맨 앞에 놓은 것은, 그 뜻이 크다고 할 것이다. 아! 부모에게 효도한 뒤에야, 임금에게 충성할 수 있고, 형을 공경한 뒤에라야, 윗사람을 공경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오륜 가운데에서, 효도와 공경이 가장 우선이다. 그러나, ≪시경≫에서 문왕을 찬양하면서, "아! 끊임없이 빛내시어 敬에 머무르셨다."고 했으니, 敬이란, 처음과 끝을 이루고 上과 下에 모두 통하는 공부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요지는, 敬 한 글자에 있고, ≪중용≫의 요지는, 誠 한 글자에 있으니, 誠과 敬이, 또한 학문을 해 나아가는 데에,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새의 두 날개와 같다고 하겠다.


* 今予於此書(금여어차서)에 以誠敬二字(이성경이자)로 冠于篇首(관우편수)하노니 誠然後(성연후)에야 能免書自我自(능면서자아자)오 敬然後(경연후)에야 可以欽體欽遵(가이흠체흠존)이니 學者豈可忽乎哉(학자개가홀호재)아 予又於卷下 國初開創 受號朝鮮之文(여우어권하 국초개창 수호조선지문)에 慨然追慕(개연추모)하야 三復興感也(삼부흥감야)하노라

(희)라 繼繼承承(계계승승)하사 重熙累洽(중희누흡)이 寔是至仁盛德(식시지인성덕)과 深恩隆惠(심은융혜)가 垂裕後昆之致(수유후곤지치)시니 繼體之君(계체지군)이 式體至德(식체지덕)하야 兢兢業業(긍긍업업)하야 誠心調劑(성심조제)하야 至于蕩蕩(지우탕탕)하며 誠心愛民(성심애민)하야 永保元元(영보원원)이면 則吾國(즉오국)이 其庶幾也(기서기야)며 吾國(오국)이 其庶幾也(기서기야)인저

(解釋) 이제 내가 이 책에서, 誠과 敬 두 글자를 가지고, 책의 맨 앞에 놓으니, 誠을 이룩한 뒤에야, 책은 책 대로이고 나는 나 대로인 병통을 면할 수 있고, 敬을 유지한 뒤에야 삼가 體行하고 삼가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이 어찌 이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또 책 말미에 국초에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는 부분에 대하여, 개연히 추모해서 세 번 반복하여 읽고 감동했노라.

아! 끊임없이 이어서 거듭 빛내시고 여러 번 무젖어듬은 실로 선왕들께서 지극한 덕성과 깊은 은혜를 후손들에게 넉넉히 남겨주신 것이 이룬 것이니, 체통을 이어갈 군주들이 이 지극한 덕을 체행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지니고 성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닦아 蕩蕩(공평 무사함)함을 이루며, 성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여 길이 만백성들을 보호한다면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며,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다.


且我東禮義 雖因箕聖之敎化(차아동예의 수인기성지교화)나 三韓以後(삼한이후)에는 幾乎泯焉(기호민언)이러니 入于我朝(입우아조)하야 禮樂(예악)이 畢擧(필거)하고 文物(문물)이 咸備(함비)하니 惜乎(차호)라 述者之猶遺乎此哉(술자지유유호차재)여 嗟爾小子(차이소자)아 益加勉?也夫(익가면전야)인저

時玄??茂 朝月上浣(시현익암무 조월상완)에 命芸館而廣印(명예관이광인)하고 作序文於卷首(작서문어권수)하노라

泯:망할 민. 焉:어찌 언. 擧:들 거.?:말 그칠 전. ?:검을 익,天干의 壬의 딴이름. ?:내시 엄, 환관.


(解釋)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예의는, 비록 箕子의 교화에 힘입었지만, 三韓 이후에는, 거의 민멸 되었다가,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 예악이, 다 거행되고, 문물이, 다 구비되었는데, 저자가 이 내용을 빠뜨리고 기록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아! 小子들은 더욱 노력할지어다.

때는 壬戌年(1742년) 정월 상순에 芸館에 명하여 널리 인쇄해서 반포케 하고, 책머리에 서문을 쓰노라.

13. 발문(跋文) - 終

* 孟子曰 讀其書(맹자왈 독기서)하고 誦其詩(송기시)하되 不知其人(부지기인)이 可乎(가호)아 하시니라 余幼時(여유시)에 見人家子弟初學者 無不以是書爲先(견인가자제초학자 무불이시서위선)하되 而第不知出於何人之手矣(이제부지출어하인지수의)러니 今朴上舍廷儀氏 來謂余曰(금박상사정의씨 래위여왈)(차)는 吾高祖諱世茂之所編也(오고조휘세무지소편야)라하니 余不覺驚喜曰(여불각경희왈) 今日(금일)에 始知其人矣(시지기인의)와라

(解釋) 맹자께서는 "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의 시를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릴 때에, 남의 집안 자제들을 보니, 초 학자로서, 모두 이 책을 제일 먼저 배우지 않음이 없었는데, 다만 누구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朴上舍 廷儀氏가 와서 나에게, "이 책은, 저희 고조부이신 諱가 世茂인 분이 엮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기뻐서 "오늘에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 (공)은 爲明廟朝名臣(위명묘조명신)이라 其學問有淵源(기학문유연원)하고 而門路亦甚正(이문로역심정)하니 觀於此編(관어차편)하면 則可知矣(즉가지의)라 其該括約說(기해괄약설)이 無非學問中體認一大公案(무비학문중체인일대공안)이요 而所序歷代(이소서역대)는 又史家之總目也(우사가지총목야)라

(解釋) 公은, 明宗 代의 이름난 신하로, 그의 학문은 연원이 있고, 門路 또한 매우 바르니,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이 포괄적이면서도 요약하여 말했으니, 이는 모두 학문하는 가운데 반드시 體認해야 할 일대의 公案이요, 차례대로 서술한 역대의 사실, 또한 史家의 總目이다.


* 或疑編內所輯理氣性命等說(혹의편내소집이기성명등설)은 非童學所能知(비동학소능지)라하나 此則不知作者本意所在也(차즉부지작자본의소재야)라 朱子嘗論仁說曰 此等名義(주자상론인설왈 차등명의)는 古人之敎 自小學之時(고인지교 자소학지시)로 已有白直分明訓說(이유백직분명훈설)하여 得知此道理(득지차도리)를 不可不著實踐履(불가불저실천이)니 所以實造其地位也(소이실조기지위야)라 若茫然理會不得(약망연리회부득)이면 則其所以求之者 乃其平生所不識之物(즉기소이구지자 내기평생소불식지물)이니 復何所向望慕愛而知所以用其力耶(복하소향망모애이지소이용기력야)아하시니 今之童學(금지동학)이 略識諸般名義界限(약식제반명의계한)하여 終有所歸宿者(종유소귀숙자)는 必於此書而得之(필어차서이득지)리니 其功(기공)이 豈不大哉(개불대재)아

  (解釋) 어떤 사람은 이 책에 수록된 理氣나 性命과 같은 말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의심하지만, 이는 저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 朱子는 일찍이 仁에 관한 내용을 논의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종류의 명칭과 의미는, 고인들이 가르칠 때에, ≪小學≫을 배울 때부터, 이미 명백 직절하고 분명한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이> 이 도리를, 착실하게 실천하지 않아서는 안 됨을 알 수 있었으니, 실제로 그와 같은 경지에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망연히 이해하다가 안 되면,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마침내 평생토록 알지 못할 개념이 되고 말 것이니, 다시 어디를 바라보고 사모하여 힘을 쓸 줄 알겠는가?." 요즘의 童學들이, 대략이나마 여러 가지 명칭과 의미가 구분됨을 알아서, 결국 귀결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반드시 이 책에서 얻은 것일 터이니, 그 공로가, 어찌 크지 않다 하겠는가!


* 聞今上殿下每臨筵(절문금상전하매임연)에 喜說此書(희설차서)라하니 睿學之明(예학지명)이 必有以識此矣(필유이식차의)시리라

(공)의(자)는 景藩(경번)이요 咸陽人(함양인)이니 登第(등제)하여 始爲翰林(시위한림)하고 官止監正(관지감정)하니라 蘇齋盧相公守愼(소제노상공수신)이 以嘗著此書 訓其子弟(이상저차서훈기자제)로 載公墓碣云(재공묘갈운)이라   竊:가만히 절, 저으기 절.  

(解釋) 저으기 들으니 지금 임금께서 經筵에 나아가실 때마다, 이 책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즐기신다고 하니, 임금님의 밝은 지혜가, 반드시 이 점을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공의 자는, 景藩이고, 본관은 함양이니, 처음 과제에 올라, 한림이 되었고, 벼슬이 監正에 이르렀다. 蘇齋 盧相公 守愼은, "공이 일찍이 이 책을 저술하여, 자제들을 가르쳤다."는 내용으로 공의 墓碣銘에 기록하였다.


禎紀元之商橫 茂陽月日(숭정기원지상횡)에 恩津宋時烈(은율송시열)은 謹跋(근발)하노라

(解釋) 崇貞 기원후 庚戌年(1670년) 10월 일에 恩津人 宋時烈은 삼가 발문을 쓰노라 

                  

                     〈 大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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