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능화판(菱花板)의 文樣
능화판(菱花板)하면 무엇에 사용되었던 것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무늬의 종류나 판의 규격에 따라서 용도가 다르다. 즉 보자기, 이불보, 책표지 등의 무늬를 박아내고 크고 작은 가지가지 목판이 있으며 이러한 목판들을 「능화판」이라고 총칭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목판가운데 菱形내에 花形을 넣고 화형내에 튜립같은 꽃한송이씩을 刻해 넣은 목판의 후면에 「주곡 채화판 무술 윤삼월일, 主谷 綵花板 戊戌 閏三月日」이라는 銘文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채화판(綵花板)이라고도 불리었던 모양이다. 한국 능화판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이것을 분명하게 해 주는 자료가 없다. 그 기원을 밝히기 위해서는 本板本印刷와 표지에 언제부터 板文을 찍기 시작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에 간행된 목판중 오늘에 전래되고 있는 경주 불국사 석가탑 제이층탑신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으로 그 간행연도를 불국사가 가람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신라 경덕왕십년(751년) 김대성에 의한 대규모의 重創이 이루어짐으로써 비롯하였는데 그 뒤 수차에 걸쳐 중건되었으나 本經이 봉안된 석가탑에 관하여는 별로 이렇다 할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이 다라니경도 신라 경덕왕십년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라니경의 납탑불사(納塔佛事)를 위해 시작된 인쇄술은 신라말에 이르러 일반 詩文을 刊行하는 단계로 진전되었다. 고려목종십년(1007년) 간행의 「일절여래인비전신 사리보협인다라니경, 一切如來人秘全身 舍利寶 印陀羅尼經」은 그 형태가 완전무결하고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서는 고려에서 가장 오래된 木板卷子本이다.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寺刹板에 의해 비롯되어 11세기경 초기에는 마침내 국가 大役軍事인 대장경(大藏經) 주조(鑄造)를 촉진케 되었다. 이와 같이 신라시대부터 이미 목판기술이 크게 발달하여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경의 간행이 성행하였고 유교사상이 보급됨에 따라 유교경전과 문집의 간행 등으로 그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목판 인쇄술과 더불어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로 많은 인쇄를 하여 많은 서적을 간행하였으므로 자연히 책의 장정에서 여러 가지 문양이나 그 제작방법들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불경의 표지를 금은니로 문양을 호사스럽게 그리거나 수를 놓은 것은 이미 신라시대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외 일반서적의 표지 장정시에 어떠한 문양이 시문되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되지만 아직까지 그 시원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서전대전도, 書傳大全圖」 고려희종오년 嘉定二年 己巳三月刊(1209년) 표지에 蓮唐草와 번연화당초문(番蓮花唐草文)이 화사한 능화판으로 施文된 것이 있다. 13세기초의 이 책표지의 능화판문양은 雷文바탕에 番蓮花가 主紋이 된 세련되고 양식화 된 문양으로 이러한 세련된 문양이 있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경과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그 이전에도 능화판이 책장정(冊裝幀)에 많이 쓰였다는 것은 13세기초 이전에 유교경전이나 일반 문서 문집류 장정에도 능화판 무늬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이직 확실하지 않다. 13세기초 이후의 사서 유교경전 문집류는 유존된 것이 점차 많아지고 특히 조선조에 들어서면 모든 서적의 책표지를 능화판 문양으로 장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이란 오래 써서 책장정이 떨어지거나 헐게 되면 전래되어 온 능화판으로 새 표지를 만들어 장정은 다시 고쳐 쓰고 또 새 책을 간행할 때에는 새로운 의장의 능화판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어떤 능화판은 대개 마멸이 심하고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도안 부식되어 버린 것이 많다. 이런 능화판을 제작하려면 우선 능화판을 제작할 수 있는 좋은 나무를 선택하여야 한다. 능화판 판본으로 가장 좋은 재질은 뼈대(연륜)나 옹이가 없이 칼질이 잘 깍여 나와야 하므로 목질이 연하고 매끈매끈한 배나무나 거제도, 울릉도에서 나는 나무틈이 잘 벌어지지 않는 거제수(화목, 樺木 일명「고리수」라고도 함), 감( )나무, 피나무, 백화나무, 후박나무, 행자나무 같은 것이 좋다. 이들 나무는 물이 한창 오르는 봄을 피해서 가을이나 겨울철에 벌목한 후 바다나 웅덩이 같은데에 몇 년간을 침장(浸藏)하여 결을 삭힌 다름 벌레먹은 것을 막고 결을 한층 더 삭히기 위해서 소금물에 삶아내어 진을 뺀 다음 다시 몇 년을 비바람에 바래게 한 다음에 능화목재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본격적인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밟아야 제작된 능화목이 부식(腐蝕)과 충식(蟲蝕)이 예방되고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이렇게 힘들여서 만든 판재에 화공들이 종이에 그린 화고(畵稿)를 뒤집어 붙이고 그 다음에 밥풀을 이긴 풀손으로 종이를 얇게 벗겨내어 문양이 잘 비치게 한 다음 刻手(刻匠)들이 偏刀와 刻刀로 문양을 음각 또는 양각한다. 음각할 때에는 판본을 책상 위에 놓고 앉은 자세를 취한다. 판재를 분류할 때 나무를 縱으로 잘랐을 때 판면을 판목목판(板目木板)이라고 하고 橫으로 잘랐을 때 版面은 목구목판(木口木板)이라고 하며, 主紋樣의 윤곽선을 남기고 바탕이 희게 남는 것을 양각판이라고 하고 바탕이 되는 부분을 검게 남기는 것을 음각판이라고 한다. 능화판으로 찍기 위하여는 먼저 종이에 괴나무나 황백나무 치자물을 노랗게 물들이거나 또는 남색(藍色, 쪽물을 드림)을 (佛經·裝幀에 주로 사용) 들이기로 하고 백지로 그대로 사용하는 예도 있다. 그 다음 능화판에 창칠을 하고 白紙 괴화(槐花) 치자 藍色을 들인 韓紙 56매를 된풀로 붙인 다음 뺀댓돌로 밀어 문양을 올리는 방법과 목판위에 백지를 올려 놓고 그대로 말총으로 만든 털방아이에 밀(密)을 묻혀서 밀어 문양을 올리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 밀을 묻히지 아니하면 깔끄러워서 잘 밀리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박아낸 冊表紙와 冊內紙를 엮어 끈으로 꿰매기 위해 구멍을 뚫는데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다섯구멍으로 꿰매고 중국이나 일본은 네구멍으로 꿰매는 것이 통례이다. 이상과 같이 능판화의 用途制作法 印榻法을 거쳐 꾸며지는 과정까지를 간단히 적어보았다.
이제까지 탁본하여 수집된 능화판의 圖文을 유형적으로 大分하면 다음과 같다.
(1) 일정한 무늬의 반복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일문양체계의 것
(2) (1)과 같은 단일체계의 지문위에 전문을 곁들인 것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의 경우 ① 기하학적 구성 : 卍자문계, 龜甲紋樣, 方格子紋系, 雷紋系, 永裂紋系
② 사실문양 구성 : 蓮唐草紋系, 雲龍紋系, 七寶紋系가 있다.
2의 경우는 1의 경우중에서 기하학적인 문양구성의 卍학문계, 당초문계, 귀갑문계, 방격자문계, 영렬문계 등의 지문 위에 主紋으로 연화문, 연당초문, 번연화문, 瑞雲紋, 龍紋, 국화문, 태극문, 壽福紋, 운학문, 봉황문, 牧丹紋, 칠보문, 花蝶紋, 十長生紋, 자류문( 榴紋), 불수감문(佛手柑紋), 仙桃紋, 梅竹紋, 草花紋 등의 무늬를 단일체계 또는 복합적으로 지문보다 크게 포치(布置)하고 있다. 이러한 주문들의 도안은 寫實的인 것을 최대한 살리고 매우 純情的인 표현을 즐긴 것이 많고 刻이 섬세하기 보다는 간명소박한 그 감각적인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많다. 지금까지 조사된 것으로 개간연대가 알려진 능화판 표지문양을 연대순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조략한 雷紋을 地紋으로 하고 큼직한 번연화문, 연당초문을 主紋으로 배합하였다. 지문인 뇌문을 사격(斜格) 또는 縱橫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 번연화문과 연당초문을 배치하였고 荷葉과 같은 효과를 주고 내주고 있다. 이러한 문양들이 들어 있는 서적은 「서전대전도, 書傳大全圖」(1209년 작), 「후산우생집, 後山友生集」(1434년 작),「적멸중론, 寂滅衆論」(1481년 작) 등이 있다.
(2) 연당초당문판(蓮唐草唐紋板)
1) 뇌문을 사격자 또는 종횡으로 刻하여 지문으로 삼고 연당초문을 크게 刻하여 主紋으로 했다. 「신주무원록, 新註無寃錄」(1447년 작)
2) 뇌문을 종횡으로 하여 地紋으로 하고 연당초를 배치하였다. 연화의 화엽에만 선을 더 刻했으며 荷葉은 葉脈을 굳게 표시하여 나팔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충렬기, 忠烈記」(1649년 작), 「묘법연화경, 妙法蓮花經」(1463년 작)
(3) 연당초문판
연꽃, 연밥, 연잎을 한줄기의 덩굴로 연결한 일종의 蓮唐草紋으로서 이러한 문양의 淵源은 고려시대 이래로 연면히 내려온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에는 蓮唐草紋과 寶相唐草紋이 각종 裝飾意匠에 많이 쓰여왔고, 더구나 불교공예품에는 매우 세련된 연당초문이 애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그러한 호상이 전래되어 책표지에 상용되었을 것이 아닌가 한다. 「보한집, 補閑集」(1659년), 「우암선생연보, 尤庵先生年譜」(1732년 작),「인릉지장, 仁陵誌狀」(1850∼1863년)
(4) 연당초칠보문판(蓮唐草七寶紋板)
卍자문을 地紋으로 하고 연당초문을 간결하게 처리하고 그 사이사이에 七寶紋을 배치한 것과 한줄기의 덩굴에 연당초를 연결하고 나머지 공간에는 칠보문을 배치하였다. 「속동문선권십삼, 續東文選卷十三」(1602년)
(5) 연당초귀갑문판(蓮唐草龜甲紋板)
조잡한 龜甲바탕에 蓮唐草紋과 番蓮花紋을 큼직하게 배치시켰다.「주문공교창리선생집, 朱文公校昌梨先生集」 (1433년)
(6) 연어문판(蓮魚紋板)
蓮花사이로 비늘을 과장해서 표현된 물고기가 노니는 문양으로 뇌양(雷樣)을 바탕으로 연화와 물고기를 간결하게 처리한 것, 파도 곳에 도식화 된 연어문을 배치한 것 등이 있다. 白野」(1748년), 「기헌지정록, 奇軒地征錄」(1806년), 「화서선생아언, 華西先生雅言」(1874년)
(7) 연보상화문판(蓮寶相花紋板)
사격지문(斜格地紋) 위에 연보상화문을 한줄기의 덩굴로 연결시킨 것과 연보상화문만을 활달하게 전면에 배치한 것이다. 「妙法蓮花經」(1609년), 「성관자재구수문자선정, 聖觀自在求修文字禪定」(1506년)
(8) 사격자뇌문화문판, 사격자화문판(斜格子雷紋花紋板, 斜格自花紋板)
雷紋帶로 區劃한 사격자문 안에 菊花, 梨花, 端花, 蓮花紋 등을 하나씩 넣어 主紋을 삼고 있는 것과 사격자뇌문대교우점(斜格子雷紋帶交又點)에 사판화형(四瓣花形)을 하나씩 장식한 것도 있고 또 전문이 헐어져 기하학 문양화된 것도 있다. 또 線으로 斜格으로 구획을 지고 그 안에 화판을 하나씩 장식한 것도 있다. 이런 종류의 사격자문 능화판은 매우 유사한 작품이 많은 것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화도시, 和陶詩」(1617년),「속동문선권지문, 續東文選卷之文」(1621년)이 있다. 이런 판은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쓰여진 문양으로 볼 수 있다.
(9) 卍字紋板
이 문양은 卍자와 卍자를 연결해 형성한 것이며 중국 蘇州지방에서 생산되던 비단에서 이와 같은 무늬가 있었으므로 소주단문(蘇州緞紋)이라고도 불린다. 따라서 이 무늬는 한국에 고유한 무늬라기보다는 중국무늬를 도입해서 책표지에 썼던 것이 분명하다.「사마방목, 司馬榜目」(1630년), 「청권집유, 靑權輯遺」(1909년) 등으로 미루어 보아 16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쓰여진 문양이며, 이 卍자를 地紋으로 하여 다른 문양을 배치한 것도 많다.
(10) 사격자백물문판(斜格子百物紋板)
능화판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문양을 표현한 것으로 귀갑, 뇌문, 서화(瑞花), 자류문( 榴紋), 불수감문(佛手柑紋), 花紋, 仙桃紋, 八卦紋, 胡蝶紋, 太極紋, 瑞雲紋, 연화문, 수복강녕문(壽福康寧紋) 등의 길상문양을 배치한 것으로 대범한 듯 하면서도 각기 물상의 특징을 잘 표현했고 순정적이면서도 문기를 풍기는 포치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능화판중 佳作이 많았고 또 가장 한국인의 性情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각개의 物像을 相互重複되지 않도록 어금매겨서 배열한 솜씨는 賞讚할 만하다. 이런한 도문은 화본에 의지하지 않고 刻匠 자신 스스로 흥겨워 각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문양의 표지의 예로는 「어제유잠, 御製柳箴」(1763년)이 있으므로 18세기에는 이미 사용된 문양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종류의 능화판의 傳世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후에도 계속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1) 칠보문판(七寶紋板)
고완(古玩), 화훼(花卉), 전적(典籍), 선자(扇子), 山氣, 雲氣 기타 길상문양을 혼성해서 이루어진 도안이다. 문양자체는 중국냄새를 풍기는 점이 많고 따라서 이러한 칠보문은 중국의 明板書籍에도 표지로 사용되었다. 明板의 예로는 「세설신어보, 世說新語補」(1586년), 「낙백천집, 樂白天集」(1609년) 등이 있는데 한국에서도 대략 이러한 시대의 판본 표지에 쓰여졌으리라고 짐작된다.
(12) 서운문판(瑞雲紋板)
구름들은 맑은 하늘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화를 주는 신비성을 표현하고 있어 길상문인 칠보문과 같이 배치된 것이 많으며, 능화판에 있어서의 서운문의 형태는 도식화된 문양으로 표현한 것이 많다. 「진실주집, 眞實珠集」(1462년)
(13) 팔각좌문판(八角座紋板)
팔각좌문안에 龜甲, 草葉, 화판(花瓣), 卍자능화판 또는 富貴壽福紋을 배치하고 있는 것들이 팔각좌의 모서리에 변화된 花瓣·卍字·壽字를 넣어 연결부분을 처리해주고 있다.「운당집, 韻堂集」(1918년), 「태인허씨송은공연가보, 泰仁許氏松隱公淵家譜」(1924년)
(14) 국당초호접문판(菊唐草胡蝶紋板), 목단당초문판(牧丹唐草紋板)
활짝 핀 국화에 당초를 장식하여 화려해 보이는 무늬인데 여기에 나르는 나비와 앉아 노니는 나비들이 만개한 국화마다 있어 복잡한 인상을 주고 있다. 단목당초문은 꽃을 같은 방향으로 표현하면 지루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이룰텐데 위, 아래, 옆으로 변화를 주어 생동감있는 분위기를 주고 있다. 또 목단당초에 호접을 배치한 것도 있다. 이러한 문양의 판들은 20세기에 많이 사용하였다.
이상으로 능화판문양(菱花板紋樣)의 변천을 보면 初期에는 문양들이 사실적인 면에 충실하면서도 유려한 선으로 문양을 표현했으며 中期에는 초기에 비해 선의 속도감을 주고 예술적 감각을 나타내고 구성의 표현에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末期에 와서 문양은 중기의 예술적 감각이 쇠퇴하고 문양이 점점 圖式化 되어가고 있다.
http://www.new-museum.go.kr/m500/m530/m530i-a.html
능화판(菱花板)하면 무엇에 사용되었던 것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무늬의 종류나 판의 규격에 따라서 용도가 다르다. 즉 보자기, 이불보, 책표지 등의 무늬를 박아내고 크고 작은 가지가지 목판이 있으며 이러한 목판들을 「능화판」이라고 총칭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목판가운데 菱形내에 花形을 넣고 화형내에 튜립같은 꽃한송이씩을 刻해 넣은 목판의 후면에 「주곡 채화판 무술 윤삼월일, 主谷 綵花板 戊戌 閏三月日」이라는 銘文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채화판(綵花板)이라고도 불리었던 모양이다. 한국 능화판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이것을 분명하게 해 주는 자료가 없다. 그 기원을 밝히기 위해서는 本板本印刷와 표지에 언제부터 板文을 찍기 시작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에 간행된 목판중 오늘에 전래되고 있는 경주 불국사 석가탑 제이층탑신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으로 그 간행연도를 불국사가 가람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신라 경덕왕십년(751년) 김대성에 의한 대규모의 重創이 이루어짐으로써 비롯하였는데 그 뒤 수차에 걸쳐 중건되었으나 本經이 봉안된 석가탑에 관하여는 별로 이렇다 할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이 다라니경도 신라 경덕왕십년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라니경의 납탑불사(納塔佛事)를 위해 시작된 인쇄술은 신라말에 이르러 일반 詩文을 刊行하는 단계로 진전되었다. 고려목종십년(1007년) 간행의 「일절여래인비전신 사리보협인다라니경, 一切如來人秘全身 舍利寶 印陀羅尼經」은 그 형태가 완전무결하고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서는 고려에서 가장 오래된 木板卷子本이다.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寺刹板에 의해 비롯되어 11세기경 초기에는 마침내 국가 大役軍事인 대장경(大藏經) 주조(鑄造)를 촉진케 되었다. 이와 같이 신라시대부터 이미 목판기술이 크게 발달하여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경의 간행이 성행하였고 유교사상이 보급됨에 따라 유교경전과 문집의 간행 등으로 그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목판 인쇄술과 더불어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로 많은 인쇄를 하여 많은 서적을 간행하였으므로 자연히 책의 장정에서 여러 가지 문양이나 그 제작방법들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불경의 표지를 금은니로 문양을 호사스럽게 그리거나 수를 놓은 것은 이미 신라시대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외 일반서적의 표지 장정시에 어떠한 문양이 시문되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되지만 아직까지 그 시원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서전대전도, 書傳大全圖」 고려희종오년 嘉定二年 己巳三月刊(1209년) 표지에 蓮唐草와 번연화당초문(番蓮花唐草文)이 화사한 능화판으로 施文된 것이 있다. 13세기초의 이 책표지의 능화판문양은 雷文바탕에 番蓮花가 主紋이 된 세련되고 양식화 된 문양으로 이러한 세련된 문양이 있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경과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그 이전에도 능화판이 책장정(冊裝幀)에 많이 쓰였다는 것은 13세기초 이전에 유교경전이나 일반 문서 문집류 장정에도 능화판 무늬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이직 확실하지 않다. 13세기초 이후의 사서 유교경전 문집류는 유존된 것이 점차 많아지고 특히 조선조에 들어서면 모든 서적의 책표지를 능화판 문양으로 장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이란 오래 써서 책장정이 떨어지거나 헐게 되면 전래되어 온 능화판으로 새 표지를 만들어 장정은 다시 고쳐 쓰고 또 새 책을 간행할 때에는 새로운 의장의 능화판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어떤 능화판은 대개 마멸이 심하고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도안 부식되어 버린 것이 많다. 이런 능화판을 제작하려면 우선 능화판을 제작할 수 있는 좋은 나무를 선택하여야 한다. 능화판 판본으로 가장 좋은 재질은 뼈대(연륜)나 옹이가 없이 칼질이 잘 깍여 나와야 하므로 목질이 연하고 매끈매끈한 배나무나 거제도, 울릉도에서 나는 나무틈이 잘 벌어지지 않는 거제수(화목, 樺木 일명「고리수」라고도 함), 감( )나무, 피나무, 백화나무, 후박나무, 행자나무 같은 것이 좋다. 이들 나무는 물이 한창 오르는 봄을 피해서 가을이나 겨울철에 벌목한 후 바다나 웅덩이 같은데에 몇 년간을 침장(浸藏)하여 결을 삭힌 다름 벌레먹은 것을 막고 결을 한층 더 삭히기 위해서 소금물에 삶아내어 진을 뺀 다음 다시 몇 년을 비바람에 바래게 한 다음에 능화목재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본격적인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밟아야 제작된 능화목이 부식(腐蝕)과 충식(蟲蝕)이 예방되고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이렇게 힘들여서 만든 판재에 화공들이 종이에 그린 화고(畵稿)를 뒤집어 붙이고 그 다음에 밥풀을 이긴 풀손으로 종이를 얇게 벗겨내어 문양이 잘 비치게 한 다음 刻手(刻匠)들이 偏刀와 刻刀로 문양을 음각 또는 양각한다. 음각할 때에는 판본을 책상 위에 놓고 앉은 자세를 취한다. 판재를 분류할 때 나무를 縱으로 잘랐을 때 판면을 판목목판(板目木板)이라고 하고 橫으로 잘랐을 때 版面은 목구목판(木口木板)이라고 하며, 主紋樣의 윤곽선을 남기고 바탕이 희게 남는 것을 양각판이라고 하고 바탕이 되는 부분을 검게 남기는 것을 음각판이라고 한다. 능화판으로 찍기 위하여는 먼저 종이에 괴나무나 황백나무 치자물을 노랗게 물들이거나 또는 남색(藍色, 쪽물을 드림)을 (佛經·裝幀에 주로 사용) 들이기로 하고 백지로 그대로 사용하는 예도 있다. 그 다음 능화판에 창칠을 하고 白紙 괴화(槐花) 치자 藍色을 들인 韓紙 56매를 된풀로 붙인 다음 뺀댓돌로 밀어 문양을 올리는 방법과 목판위에 백지를 올려 놓고 그대로 말총으로 만든 털방아이에 밀(密)을 묻혀서 밀어 문양을 올리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 밀을 묻히지 아니하면 깔끄러워서 잘 밀리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박아낸 冊表紙와 冊內紙를 엮어 끈으로 꿰매기 위해 구멍을 뚫는데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다섯구멍으로 꿰매고 중국이나 일본은 네구멍으로 꿰매는 것이 통례이다. 이상과 같이 능판화의 用途制作法 印榻法을 거쳐 꾸며지는 과정까지를 간단히 적어보았다.
이제까지 탁본하여 수집된 능화판의 圖文을 유형적으로 大分하면 다음과 같다.
(1) 일정한 무늬의 반복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일문양체계의 것
(2) (1)과 같은 단일체계의 지문위에 전문을 곁들인 것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의 경우 ① 기하학적 구성 : 卍자문계, 龜甲紋樣, 方格子紋系, 雷紋系, 永裂紋系
② 사실문양 구성 : 蓮唐草紋系, 雲龍紋系, 七寶紋系가 있다.
2의 경우는 1의 경우중에서 기하학적인 문양구성의 卍학문계, 당초문계, 귀갑문계, 방격자문계, 영렬문계 등의 지문 위에 主紋으로 연화문, 연당초문, 번연화문, 瑞雲紋, 龍紋, 국화문, 태극문, 壽福紋, 운학문, 봉황문, 牧丹紋, 칠보문, 花蝶紋, 十長生紋, 자류문( 榴紋), 불수감문(佛手柑紋), 仙桃紋, 梅竹紋, 草花紋 등의 무늬를 단일체계 또는 복합적으로 지문보다 크게 포치(布置)하고 있다. 이러한 주문들의 도안은 寫實的인 것을 최대한 살리고 매우 純情的인 표현을 즐긴 것이 많고 刻이 섬세하기 보다는 간명소박한 그 감각적인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많다. 지금까지 조사된 것으로 개간연대가 알려진 능화판 표지문양을 연대순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조략한 雷紋을 地紋으로 하고 큼직한 번연화문, 연당초문을 主紋으로 배합하였다. 지문인 뇌문을 사격(斜格) 또는 縱橫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 번연화문과 연당초문을 배치하였고 荷葉과 같은 효과를 주고 내주고 있다. 이러한 문양들이 들어 있는 서적은 「서전대전도, 書傳大全圖」(1209년 작), 「후산우생집, 後山友生集」(1434년 작),「적멸중론, 寂滅衆論」(1481년 작) 등이 있다.
(2) 연당초당문판(蓮唐草唐紋板)
1) 뇌문을 사격자 또는 종횡으로 刻하여 지문으로 삼고 연당초문을 크게 刻하여 主紋으로 했다. 「신주무원록, 新註無寃錄」(1447년 작)
2) 뇌문을 종횡으로 하여 地紋으로 하고 연당초를 배치하였다. 연화의 화엽에만 선을 더 刻했으며 荷葉은 葉脈을 굳게 표시하여 나팔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충렬기, 忠烈記」(1649년 작), 「묘법연화경, 妙法蓮花經」(1463년 작)
(3) 연당초문판
연꽃, 연밥, 연잎을 한줄기의 덩굴로 연결한 일종의 蓮唐草紋으로서 이러한 문양의 淵源은 고려시대 이래로 연면히 내려온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에는 蓮唐草紋과 寶相唐草紋이 각종 裝飾意匠에 많이 쓰여왔고, 더구나 불교공예품에는 매우 세련된 연당초문이 애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그러한 호상이 전래되어 책표지에 상용되었을 것이 아닌가 한다. 「보한집, 補閑集」(1659년), 「우암선생연보, 尤庵先生年譜」(1732년 작),「인릉지장, 仁陵誌狀」(1850∼1863년)
(4) 연당초칠보문판(蓮唐草七寶紋板)
卍자문을 地紋으로 하고 연당초문을 간결하게 처리하고 그 사이사이에 七寶紋을 배치한 것과 한줄기의 덩굴에 연당초를 연결하고 나머지 공간에는 칠보문을 배치하였다. 「속동문선권십삼, 續東文選卷十三」(1602년)
(5) 연당초귀갑문판(蓮唐草龜甲紋板)
조잡한 龜甲바탕에 蓮唐草紋과 番蓮花紋을 큼직하게 배치시켰다.「주문공교창리선생집, 朱文公校昌梨先生集」 (1433년)
(6) 연어문판(蓮魚紋板)
蓮花사이로 비늘을 과장해서 표현된 물고기가 노니는 문양으로 뇌양(雷樣)을 바탕으로 연화와 물고기를 간결하게 처리한 것, 파도 곳에 도식화 된 연어문을 배치한 것 등이 있다. 白野」(1748년), 「기헌지정록, 奇軒地征錄」(1806년), 「화서선생아언, 華西先生雅言」(1874년)
(7) 연보상화문판(蓮寶相花紋板)
사격지문(斜格地紋) 위에 연보상화문을 한줄기의 덩굴로 연결시킨 것과 연보상화문만을 활달하게 전면에 배치한 것이다. 「妙法蓮花經」(1609년), 「성관자재구수문자선정, 聖觀自在求修文字禪定」(1506년)
(8) 사격자뇌문화문판, 사격자화문판(斜格子雷紋花紋板, 斜格自花紋板)
雷紋帶로 區劃한 사격자문 안에 菊花, 梨花, 端花, 蓮花紋 등을 하나씩 넣어 主紋을 삼고 있는 것과 사격자뇌문대교우점(斜格子雷紋帶交又點)에 사판화형(四瓣花形)을 하나씩 장식한 것도 있고 또 전문이 헐어져 기하학 문양화된 것도 있다. 또 線으로 斜格으로 구획을 지고 그 안에 화판을 하나씩 장식한 것도 있다. 이런 종류의 사격자문 능화판은 매우 유사한 작품이 많은 것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화도시, 和陶詩」(1617년),「속동문선권지문, 續東文選卷之文」(1621년)이 있다. 이런 판은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쓰여진 문양으로 볼 수 있다.
(9) 卍字紋板
이 문양은 卍자와 卍자를 연결해 형성한 것이며 중국 蘇州지방에서 생산되던 비단에서 이와 같은 무늬가 있었으므로 소주단문(蘇州緞紋)이라고도 불린다. 따라서 이 무늬는 한국에 고유한 무늬라기보다는 중국무늬를 도입해서 책표지에 썼던 것이 분명하다.「사마방목, 司馬榜目」(1630년), 「청권집유, 靑權輯遺」(1909년) 등으로 미루어 보아 16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쓰여진 문양이며, 이 卍자를 地紋으로 하여 다른 문양을 배치한 것도 많다.
(10) 사격자백물문판(斜格子百物紋板)
능화판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문양을 표현한 것으로 귀갑, 뇌문, 서화(瑞花), 자류문( 榴紋), 불수감문(佛手柑紋), 花紋, 仙桃紋, 八卦紋, 胡蝶紋, 太極紋, 瑞雲紋, 연화문, 수복강녕문(壽福康寧紋) 등의 길상문양을 배치한 것으로 대범한 듯 하면서도 각기 물상의 특징을 잘 표현했고 순정적이면서도 문기를 풍기는 포치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능화판중 佳作이 많았고 또 가장 한국인의 性情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각개의 物像을 相互重複되지 않도록 어금매겨서 배열한 솜씨는 賞讚할 만하다. 이런한 도문은 화본에 의지하지 않고 刻匠 자신 스스로 흥겨워 각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문양의 표지의 예로는 「어제유잠, 御製柳箴」(1763년)이 있으므로 18세기에는 이미 사용된 문양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종류의 능화판의 傳世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후에도 계속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1) 칠보문판(七寶紋板)
고완(古玩), 화훼(花卉), 전적(典籍), 선자(扇子), 山氣, 雲氣 기타 길상문양을 혼성해서 이루어진 도안이다. 문양자체는 중국냄새를 풍기는 점이 많고 따라서 이러한 칠보문은 중국의 明板書籍에도 표지로 사용되었다. 明板의 예로는 「세설신어보, 世說新語補」(1586년), 「낙백천집, 樂白天集」(1609년) 등이 있는데 한국에서도 대략 이러한 시대의 판본 표지에 쓰여졌으리라고 짐작된다.
(12) 서운문판(瑞雲紋板)
구름들은 맑은 하늘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화를 주는 신비성을 표현하고 있어 길상문인 칠보문과 같이 배치된 것이 많으며, 능화판에 있어서의 서운문의 형태는 도식화된 문양으로 표현한 것이 많다. 「진실주집, 眞實珠集」(1462년)
(13) 팔각좌문판(八角座紋板)
팔각좌문안에 龜甲, 草葉, 화판(花瓣), 卍자능화판 또는 富貴壽福紋을 배치하고 있는 것들이 팔각좌의 모서리에 변화된 花瓣·卍字·壽字를 넣어 연결부분을 처리해주고 있다.「운당집, 韻堂集」(1918년), 「태인허씨송은공연가보, 泰仁許氏松隱公淵家譜」(1924년)
(14) 국당초호접문판(菊唐草胡蝶紋板), 목단당초문판(牧丹唐草紋板)
활짝 핀 국화에 당초를 장식하여 화려해 보이는 무늬인데 여기에 나르는 나비와 앉아 노니는 나비들이 만개한 국화마다 있어 복잡한 인상을 주고 있다. 단목당초문은 꽃을 같은 방향으로 표현하면 지루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이룰텐데 위, 아래, 옆으로 변화를 주어 생동감있는 분위기를 주고 있다. 또 목단당초에 호접을 배치한 것도 있다. 이러한 문양의 판들은 20세기에 많이 사용하였다.
이상으로 능화판문양(菱花板紋樣)의 변천을 보면 初期에는 문양들이 사실적인 면에 충실하면서도 유려한 선으로 문양을 표현했으며 中期에는 초기에 비해 선의 속도감을 주고 예술적 감각을 나타내고 구성의 표현에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末期에 와서 문양은 중기의 예술적 감각이 쇠퇴하고 문양이 점점 圖式化 되어가고 있다.
http://www.new-museum.go.kr/m500/m530/m530i-a.html
우현(jjhyun1577) | |
음성기록역사관소장 22.5*55*2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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