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伏先生文集(奎1640), 鄭經世(朝鮮)著.
20卷·別集 12卷 合 16冊 木板本 32×22cm.
四周雙邊 半郭:20.5×16.1cm.
有界 10行 20字.
版心:上下花紋魚尾.
愚伏 鄭經世(1563∼1633)의 詩文集으로 原集은 1657년(孝宗 8)에 初刊, 1844년(憲宗
10)에 重刊했는데 別集은 1899년(光武 3)에 후손 鄭夏默이 原集과 함께 追補 간행했다
. 鄭經世의 자는 景任, 호는 愚伏, 본관 晉州, 시호는 文莊公이다. 西厓 柳成龍의 門
人으로 1582년(宣祖 15)에 進士, 1586년 24세로 謁聖科에 합격, 槐院에 들어서 副正字
가 되었고 곧 史官으로 經筵에서 宣祖의 對問에 응했다. 嶺南觀察使로 있을 적에 民風
을 일으켜 聲望이 높았으며 이때 柳成龍을 위해 上章했다가 귀양살이를 하였다. 1607
년 大丘府使가 되었고 이어 羅州牧使 全羅觀察使를 지냈다. 이때 黨禍에 얽혀 세차례
나 入獄治理되었다. 仁祖反正 후 弘文館副提學 大司憲 吏曹判書大提學을 지냈다. 그는
禮學에 造詣가 깊어 國家典禮나 疑禮의 變則이 있으면 반드시 그의 의견을 들었다. 沙
溪는 그를 禮學에 있어서는 退溪보다 낫다고 칭찬하였다. 朱子學을 尊信하였으며 性理
說에 있어서 退溪와 반대되는 의견을 폈고 한편 栗谷에 가까운 논리를 전개했다. 저서
로는 ≪思問錄≫ ≪朱文酌海≫ ≪喪禮參考≫ 등이 있다. 序는 없고 앞에 原集의 목록
이 있다. 原集 {권1}:辭(次歸去來辭) 1편, 詩(題從政名言後 요花 등) 80수. {권2}:詩
83수. 시의 편차는 연대순으로 되어 있으며 挽詩와 次韻이 많다. 그의 시는 敍事的인
경향으로 平亮한 音調를 중시했다 한다. {권3}:奏文으로 陳慰奏文 請復登州舊路奏文,
敎書로 不允領議政柳成龍辭職敎書 伏節死義及守城身死守令力戰陣亡將卒子孫除職免賤曉
喩敎書 등 7편, 咨帖으로 正使姜日廣回帖 都督回帖 袁軍門崇煥揭帖 爲副元帥鄭忠信揭
劉興治帖 등 8편, 疏箚로 玉堂請自强箚 玉堂請守都城箚應求言敎疏 請從祀五賢文廟疏
등 4편.「陳慰奏文」은 1630년(仁祖 8) 滿洲의 女眞이 明에 침입 하였을 때 그것을 위
로키 위해 明에 올린 奏文이다. 「請復登州舊路奏文」은 淸의 발호로 貢路가 막혀 바
다로 왕래할 적에 登州의 길을 터달라고 올린 奏文이다. 그외의 것은 壬辰亂 중에 관
계되는 文書 또는 亂後의 정책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권4∼7}:疏箚로 玉堂論旱災
箚 議喪禮箚 論答虜書箚 請勿用兵가島箚 乞復讐從軍疏乞解職歸葬亡子疏 등 88편. 壬亂
과 가島문제 및 喪禮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권6,7}에는 대부분 辭職疏
등 身上에 관한 것들이다. {권8}:議로 交河置京議 宣惠號牌便否議 號牌量田議 등 3편,
啓辭로 私廟屬號博考前例啓 請去昏朝所上宣廟祖字啓 請寢內奴復戶之命啓 請罷榜啓 등
14편, 呈文으로 上楊經理鎬文 督府呈文 등 8편. 號牌와 量田에 관한 議, 內奴의 復戶
에 관한 啓 등이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宣祖에게 「祖」를 올리는 것은 부당하다
는 啓는 忌諱에 저촉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것이다. {권9∼13}:書로 上西厓先生 與李完
平 與李漢陰 與李五峯 與張旅軒 答金沙溪 答屛山文會 등 263편. 당대의 명사인 柳成龍
李元翼 李德馨 李好閔 張顯光 金長生 등과의 與答으로 時事 文學 禮儀 性理 등에 관한
토론 형식의 내용들이 많다. 특히 沙溪와는 진지하게 四禮의 제반 문제를 논하고 있어
그의 禮說의 朱子家禮에 바탕을 두고서 한국의 현실에 適用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
권14}:雜著로 愚岩說 朝天記事 復者朝服 外棺用松脂方 金沙溪經書疑問辨論 募粟文 城
山山城收穀文 등 29편. 禮說 史實 또는 일반 상식 등 여러 잡다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권15}:序로 洛社合계序 尙州鄕案錄序 등 8편, 記로 城山山城嶺海樓記 등 3편 跋로 書
武夷志跋 書陰符經後書芝峰采薪雜錄後 書崔大容社倉約條後 書奇高峯答龜岩書後 書急難
圖後 등 20편. 洛社合계 尙州鄕案 및 社倉約條에 관한 것은 社會經濟史의 자료가 된다
. {권16}:表 箋 啓 檄 으로 謝皇恩表謝賜兒馬馬粧箋 募糧檄 등 22편. 事大文書와 公文
文書들이다. 上樑文으로 道南書院廟上樑文 등 3편, 祝文으로 屛山書院享祀祝文 등 7편
, 祭文으로 祭水軍엄死文 등 31편. {권17∼19}:碑銘 碣銘 墓表 墓誌로 議政府左贊成權
公神道碑銘 戶曹參議韓公墓碣銘 行兵曹判書盧公墓表 穆陵誌 등 31편. {권20}:行狀으로
西厓先生行狀 漢陰李公行狀 등 4편. 끝에 「崇禎紀元後四甲辰仲夏愚山書院重刊」이란
刊記가 있다. 別集 {권1}:詩로 送許書狀功彦赴日本挽金參議涌 등 36수. 原集의 시에
서 와는 달리 詩評을 간단히 기술한 註記가 많으며 挽詩가 대부분이다. 敎書로 逆賊梁
景鴻等伏誅後播告八方敎書 1편, 咨帖으로 毛都督文龍揭帖 등 6편, 疏箚로 辭慶尙監司
疏 등 7편, 辭狀으로 辭全羅監司狀 등 2편, 啓辭로 論進圭啓 등 3편, 書로 與張旅軒
答金沙溪 등 17편, 序로 壬午司馬榜會圖序 등 2편, 論으로 藏絲付吏論 1편, 拾遺로 翊
衛司衛率黃公墓碣文草記 1편이 있다. {권2}:思問錄에는 周易 禮記 儀禮에 관한 의심나
는 문제를 놓고 「按」이라 하여 자기의 견해를 朱子 등의 說을 引用하여 기재하였다.
養正篇에는 「檢束身心之禮」에서 12目, 「入事父母出事師長通行之禮」에서 11目, 「
書堂肆業之禮」에서 5目으로 나누어 아동의 禮節 修養方法을 적었다. {권3}:經筵日記
로 1623년∼1630년 사이에 經筵에서의 講錄이다. {권4} 이하는 附錄이다. {권4∼7}:年
譜. 죽은 뒤 配享의 사실까지 상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宋時烈이 撰進한 것을 移錄하였
다. {권8}:言行錄. 다른 서적에서 저자의 言行을 적은 부분을 모은 것으로 끝마다 原
典을 밝혀 두었다. {권9}:墓誌銘(李埈撰), 神道碑銘(趙絅撰), 墓表(權愈撰). {권10}:
行狀(宋浚吉撰). {권11}:謚狀(宋時烈狀). {권12}:賜祭文(具鳳瑞 趙錫胤 李堂揆 등 製
進), 祭文(李琠 李埈 宋浚吉 등) 25편, 挽詞(鄭蘊 金尙憲 李廷龜 등) 22편, 奉安文(金
湜 柳台佐) 2편, 常享祝文(柳台佐) 1편. 끝에는 간행의 경위를 밝힌 후손 夏默의 跋이
있다. 大文章家요 名宦으로 일컬어진 愚伏의 詩文集인만큼 分量도 많거니와 내용도 다
양하여 문학적 및 사료적 가치가 높다. 그는 西厓의 門人이었으나 附錄에 그와 관계되
는 글을 쓴 인사들은 柳台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老論系列이다. 仁祖反正 후
仕宦을 누린 탓으로 보인다. 본소장본은 原集으로 ≪愚伏先生文集≫<奎2092, 3095> 등
4종, 別集으로 ≪愚伏先生別集≫<奎3140> 1종이 있으며 合集으로 ≪愚伏先生文集≫<奎
1640, 3290> 2종이 있다. 合集에는 合 16책으로 {卷17,18}에 해당하는 1책이 缺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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